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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영원히 잃을 것 같은 불안감에...
[김학천 연재소설] 두 나무 - 1
2012년 04월 04일 (수) 12:44:18 김학천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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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가 새로운 연재소설을 선보입니다. ‘한맥 문학’을 통해 정식 수필가로 등단한 김학천님의 중편으로,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 * * *

두 나무

                                                                                                              김 학천

  미사가 끝나고 신자들과 인사를 마치자 신 신부는 곧바로 고해소로 들어갔다. 사제석에 앉아 기도를 하고 잠시 기다리니 한 여성이 들어와 무릎을 꿇는다. 고해창 너머에서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더니 목멘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저의 죄를 고합니다. 자격조차 없겠지만...” 다시 훌쩍이더니 겨우 떨리는 목소리로 “아주 오래 전 아버지와 부도덕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 일로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그리 한 것입니다. 아직 살아있는 제가 밉습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소리 죽여 하염없이 운다.
  “용서를 받음으로서 평안을 얻으십시오.”
신부의 목소리도 약간 떨리는 듯 했으나 이내 냉정을 찾아 보속을 주고 사죄경을 외워준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 아직까지 무릎을 꿇은 채 고개 숙인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눈물로 범벅이 된 여인을 일으켜 세운다.
  “혜린아, 잘 왔다.”
  “오라버니! 처음 뵙겠어요.”
신부가 두 팔을 크게 벌리자 거기에 와락 안기며 또 한참을 숨죽여 운다.
잠시 후 옷소매 끝을 당겨 얼굴을 닦는 그녀에게, “지금 가 볼 테냐?”하고 묻는다.
  “예” 나혜린이 여전히 숙인 고개를 들지 못하고 대답한다.

  둘이서 성당 뒤편으로 십여 분 거리에 좀 떨어져 있는 곳으로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긴다.
  신부가 먼저 말을 꺼낸다. “널 찾느라고 무던히 애썼는데 이렇게 만나게 돼서 참으로 기쁘구나. 아버님도 무척 반가워하실 게다.”
  “네. 오라버니.” 신부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애잔하다.
  “아버님의 유품을 정리하다보니 손 때 묻은 지갑 속에 사진 한 장이 들어있더구나. 아주 미인인 여인과 둘 사이 품에 안은 예쁜 여자어린애와 셋이 찍은 사진인데 뒤에는 빨간 장미 그림과 함께 ‘내 딸 혜린이’라고 쓰여 있더구나.”
  옆으로 얼굴을 돌려 누이동생을 바라보며, “그게 너란 걸 금방 알았다. 운명하실 때 ‘레이나 혜린이’하셨거든.” 나혜린이 신부의 손을 꼬옥 쥔다.
  “헌데 그 위에 마사꼬(貞子)란 이름과 사망일과 무슨 지명 같은 게 쓰여 있었는데 아마 최근에 덧 붙였던 것 같던데...”

  천주교 납골당에 도착하자 관리인 한분이 나오더니 “신부님 오셨어요? 이리로 오시지요.” 하며 안내를 한다. 안에 들어서자 입구에 김대건 신부석상이 있고 복도를 따라 몇 성인들의 영정이 걸려있는 중간쯤 성모상 옆에 이세영의 자리가 있었다.
  ‘이세림 세베리아노’ 이름 밑에 ‘신희애-신래원, 나정자-나혜린이 사랑한 분’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혜린은 순간 왈칵 울음을 쏟아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한참을 넋 나간 듯 서있더니 오빠 팔에 안기어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았다. 진정된 기미가 보이자 나혜린이 말을 꺼낸다.
  “아버지 얘기를 좀 들려주세요, 오라버니.”
  하루가 시작하면 아침저녁으로 이만석은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동네에 있는 조그만 앞집 이발소다. 그 곳에 가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집의 형제들은 모두가 다 수재 형에 공부벌레들로 그 동네에서는 선망의 대상인 집이었다. 공부 뿐 아니라 그 집 형제들이 보던 많은 문학책들도 읽을 수 있고 클래식 음악은 물론 정치며 예술이며 자신에겐 넘치는 것들이었다.
  외톨이로 자란 이만석은 자신도 그들과 한 피붙이였으면 하는 부러운 마음으로 드나들면서 그들과 형 아우하며 지내지만 어딘지 모르게 겉돌곤 했다. 아마도 삶의 철학이 달라서라고 느끼지만 어쨌든 저 혼자 생각이긴 해도 자기에게도 든든한 언덕바지가 있다는 것에 흡족했다.
  그러나 그런 것 외에도 그 곳에는 항상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물이 스물 네 시간 끓고 있어 아무 때고 따뜻한 물로 세수를 할 수 있고 또 커다란 거울 앞에서 면도를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곳은 그의 꿈을 키우는 그만의 비밀연습장소이기도 했다.

  이만석은 당진 앞바다 국화도 섬에서 태어나 자란 후 고등학교를 마치자 부모와 뜻이 안 맞는다고 집을 나와 외조부모의 고향인 아산으로 옮겨와 두 노인네가 하는 코딱지만 한 구멍가게에 얹혀살면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꿈과 이상은 커서 부자도 되고 세상에 유명해지고 싶었는데 준수한 외모에 잘 갖추어진 몸매를 가진 그는 배우로 성공하는 것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이라 여겼다. 게다가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삼류 배우 강씨의 허풍 섞인 자랑은 그에게 바람을 잔뜩 넣어주기에도 충분했다.
  신정일이 바로 그의 아이돌이었다. 이만석 뿐만이 아니라 그 때는 신정일이 영화계를 주름잡던 시절이라 배우를 꿈꾸는 젊은이 들이라면 너도 나도 그의 모습을 닮으려고 애썼다. 머리하나에서 옷가지며 말투나 몸동작까지도 몽땅 그의 흉내를 냈다.
  그도 예외는 아니어서 신정일처럼 스포츠형으로 머리를 짧게 깎고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들이대고는 인상을 써 보기도 하고 씩 웃어보기도 하며 대사를 흥얼거리기도 해 본다. 그러니 살림집이 안으로 붙어있는 이발소 집은 가게가 문을 닫은 후에도 한 식구처럼 드나드는 그에게 이보다 더 좋은 연습 장소는 없었다.
  거울 앞에서 연기며 대사를 읊는 연습을 하던 그는 거울 가까이 들여다보고는 혼잣말을 한다. “세베리아노, 넌 할 수 있어.”

  ‘세베리아노’는 그의 가톨릭 세례명이다. 어머니의 성화에 성당에 나가 교리를 받고 세례까지 받긴 했으나 아직 신심은 부족하다. 그런 그가 일요일에 열심히 성당 가는 데는 그만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보고 싶어 하는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아산 공세리에는 아주 예쁜 고딕식의 전통적 성당이 있는데 십자가 첨탑이 뾰족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어 사방 어디서나 보인다. 1897년에 프랑스 드비즈 신부가 조선시대 충남 일대의 조세를 집결시키던 공세창을 얻어 그 자리에 세운 성당이다. 오래된 성당답게 깊고 아늑한 실내분위기에 주위에 있는 수백 년 된 팽나무와 느티나무를 비롯한 고목들은 유서 깊은 이 성당을 더욱 고풍스럽게 해 준다.

  이만석은 아산으로 이사 온 후 다니던 이 성당에서 처음 만난 한 여자에게 마음이 끌렸다. 신희애 데레사, 수녀지망생의 아주 고운 여성이었다. 그녀와 몇 마디 말만 나누어도 그 날 하루는 온 세상이 내 것인 양 즐거웠다. 

  어느 봄날 성당의 대학부에서는 피정을 국화도로 가기로 했다. 답사 선발대로 청년부 부장과 청년회장과 총무 그리고 신희애가 담당 수녀님의 인솔아래 먼저 가보기로 했는데 그곳은 마침 이만석의 고향이어서 누구보다도 그곳 지리를 잘 아는 그도 같이 가기로 했다.       국화도는 당진에서 배로 반시간 남짓 걸리는 곳이었다.
  도착한 첫날 저녁 사전 답사를 끝낸 후 저녁미사를 보고 각자 자유 시간이 허용되었을 때 이만석은 신희애에게 신기한 곳을 구경시켜 주겠다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녀는 바다 구경도 처음이려니와 그가 신실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들어서 선뜻 따라 나섰다.
  국화도의 양 옆에는 조그만 섬이 하나씩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토끼섬으로 썰물일 때는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소위 모세의 기적의 바다갈림길이었다.

  바다를 건너 그곳으로 안내한 그는 그녀와 단 둘이 큰 나무 밑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마치 알퐁스 도데에 나오는 여자아이와 목동처럼.
  “여기 이렇게 단 둘이 와보니 마치 에덴동산에 있는 것 같네. 넌 이브, 난 아담. 히히”
그는 마냥 좋았다.
  “어머, 정말 아름다운 곳이네. 참 고요하고 평온하기도 하고. 여기 이렇게 있으니까 세상 것들을 모두 다 떨쳐 버릴 수 있을 것도 같애요. 헌데 세베리아노는 어떻게 해서 국화섬이 고향인데 아산까지 오게 되었어요?”하고 신희애가 물었다.
  “응, 우리 어머니는 아산이 고향이지만 아버지가 국화도 토박이거든. 너무 가난해서 겨우 장가를 들으셨다고 하셨어. 그래서 나보고 이담에 만석꾼 부자가 되라고 이름도 이렇게 지으셨대. 헌데 난 내 이름이 싫다. 너무 촌스러워서. 네 이름은 참 예쁘고 좋다.”
  “고마워요, 우리 할아버지가 지워주셨는데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믿음, 소망, 사랑 ‘신망애’를 본떠서 그리 하셨대요. 그러시면서 내가 자식을 낳으면 래(來)자 돌림으로 지으라고 하셨어요. 래(來)자를 잘 보면 십삼 인이 그 안에 있는데 십자가 옆에는 작은 인(人)자가 두 개 있고 가운데에는 큰 사람인(人)자가 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닮은 형상이라는 거야. 게다가 ‘올 래(來)’자는 재림의 의미도 있고. 근사하지 않아요?”
  잠시 말을 끊더니 “그런데 할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가 없어서 죄송해요.”
  “왜?”
  “난 결혼을 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수녀가 되고 싶거든요. 작은 꽃 소화(小花) 데레사 처럼...”하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소화 데레사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어려서 의식을 잃기도 하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고생을 하였는데 성모신심이 좋아 ‘미소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는 중에 병이 낫는 기적을 체험을 했대요. 열네 살 때 하느님의 소명을 받고 맨발의 갈멜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어 했는데 나이가 미달이어서 거절되었대요. 그런데 교황께서 특별히 배려해서 입회가 허락되었대요. 그 뒤 그 분은 ‘작은 길’이란 자신만의 고유 영성으로 생을 살다가 불과 스물네 살에 숨을 거둔 분이셔요. 나도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어 내 본명을 그렇게 지은 거지요.” 

  “그으~래? 수녀가 된다고...?”
  별안간 그는 그녀가 자기완 아주 다른 사람으로 멀리 느껴졌다. 그러면서 금단의 열매 같은 묘한 느낌이 엄습했다. (선악과. 만지지도 따 먹지도 말라던 바로 그 금단의 열매?)

  왜 별안간 그런 생각이 났는지 알 수 없으나 그는 어쩌면 그녀를 영원히 잃을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에게 바싹 다가가 껴안았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놀라 반항하는 그녀는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일행과 함께 본당으로 돌아온 후 그녀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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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0)
  또하나의 대박 이병철 2012-04-06 14:03:00
기대됩니다. 도무지 못하는 것이 없으신 듯. 고등학교때 읽은 앙드레지드의 "좁은 문" 분위기가 살짝 나면서,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해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99.XXX.XXX.225)
  제롬과 알리사 보다는 김학천 2012-04-06 15:33:18
아마도 희대의 사기꾼 이삭의 삶의 과정의 변화가 더 죄많은 우리에게는...
땡큐.
추천0 반대0
(71.XXX.XXX.133)
  흥미진진.... 이상희 2012-04-05 13:27:15
껴안기만 했는데 혹시 아들이 생긴 건가요? 흥미 진진, 다음편 기다립니다.
추천0 반대0
(138.XXX.XXX.111)
  다운로드보다는 김 학천 2012-04-06 10:58:06
성령으로 잉태하사...
부활절에 즈음하여.
추천0 반대0
(71.XXX.XXX.133)
  뭔가 성스럽기도 하고 속스럽기도 할 것 같은 묘한 워낭 2012-04-04 17:42:33
분위기의 소설이군요. 아주 색다른 주제의 단편이 흥미롭습니다. 필자의 변화무쌍한 상상력을 어떻게 4편에 다 담아낼 것인가도 관전 포인트군요. 근데, 껴안기만 한 건가요?
추천0 반대0
(173.XXX.XXX.18)
  손만 잡아도? 김학천 2012-04-06 10:56:31
'아이 생기는 법'에 대한 요새 아이들에게 해주는 답변:
다운로드!
추천0 반대0
(71.XXX.XXX.133)
  신정일 = 오달 2012-04-04 10:44:02
신성일 + 김정일 ?

시작이 독자를 사로잡네요. 고해성사 그 실마리가 어디로 갈지.
기대합니다.
추천0 반대0
(108.XXX.XXX.72)
  나도 몰랐던 김 학천 2012-04-04 11:14:55
절묘한 콤보? ㅎㅎㅎ
김성일로 할 걸 그랬나?
그래도 배우이름에 김씨는 잘 어울려서...
추천0 반대0
(71.XXX.XXX.133)
  정말 반갑네요 김종하 2012-04-03 23:42:47
아크로에 오랜만에 등장한 소설.
신성일, 아니 신정일을 닮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삶에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 지... 제목 '두 나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궁금하고... 다음 편은 언제 나올까~요?^^
추천0 반대0
(75.XXX.XXX.22)
  김 학천 2012-04-04 11:16:07
그러나 이 만석씨에게 물어봐야되겠지요?
추천0 반대0
(71.XXX.XXX.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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