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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김칫국물에도 ‘가슴’을 여네
[삶과 영성] 사소한 것에 목숨걸지 말고 ‘사람’을 봐야
2012년 02월 09일 (목) 17:12:36 곽건용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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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품 스위치가 맺어준 인연

한 아랍 청년이 사람들로 붐비는 텔아비브(Tel Aviv)의 어떤 시장 한 가운데 서 있습니다.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 있는데 그런 척하지 않으려는 데서 오히려 뭔가 중요한 일을 시도하려 한다는 사실이 엿보입니다. 그는 오른손을 왼 소매 안에 집어넣고 두 눈 꾹 감고 스위치 같은 것을 누릅니다. 하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이 일어났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스위치가 불량품이어서 폭탄이 터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생명을 건 자살테러도 이렇듯 하찮은 실수로 그르치기도 합니다.

청년은 자기가 살아남는 상황은 대비하지 않았으므로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그는 텔아비브의 유대인 지역 안에 있습니다. 그는 일단 시장을 빠져나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스위치를 고치러 수리점에 갔습니다. 수리점 주인은 동유럽 출신의 유대인인데 스위치를 고칠 수는 없고 똑같은 걸 주문해야 하는데 며칠 걸린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연고자 하나 없는 곳에서 며칠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를 그곳에 보낸 테러단체는 뉴스에 폭발소식이 보도되지 않자 그에게 전화해서 다음날 오전까지 실행하지 않으면 가족들을 해치겠다고 협박합니다. 청년은 다음날은 안식일이라서 아무도 시장에 나오지 않거니와 스위치를 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해서 실행날짜를 하루 미룹니다. 그의 몸에 장치된 폭탄은 제거하면 자동으로 터지게 되어 있었으므로 그는 씻지도 못하고 옷도 벗지 못합니다.

그는 수리점 지붕에 물이 새는 걸 보고 재워주면 그걸 고쳐 주겠다고 제안했고 주인과 합의가 되어 지붕에 올라갔는데 거기서 주인 아내가 자살하려는 광경을 우연히 보고 그녀를 설득해서 자살을 포기시킵니다. 남편에게는 물론 비밀로 하고 말입니다. 이래저래 그는 주인 내외와 친해져서 저녁까지 얻어먹는데 주인은 그가 누구란 걸 잊어버린 양 술이 취해 자기 과거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일면식도 없던 세 사람은 그렇게 가까워집니다.

청년이 거기 처음 왔을 때부터 눈여겨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수리점 건너편에서 작은 매점을 하는 젊은 유대인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옷도 야하게 입고 문신과 피어싱도 한 신세대 여자였습니다. 청년은 여자가 몇 명의 남자에게 괴롬당하는 것을 보고 그녀를 도와주어 그녀와 가까워집니다. 그녀는 혼전임신을 했다고 해서 집에서 쫓겨난 여자였습니다. 청년은 자기가 하려는 일에 대해서는 물론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테러단체 요원은 청년의 의지가 약해졌다고 보고 원격조종장치로 폭탄을 터뜨리겠다고 통보합니다. 마침 그때 청년은 유대인 여자와 같이 있었는데 폭탄이 터지면 그녀가 죽을까봐 갑자기 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영문을 모르고 여자는 그는 따라 뜁니다. 그가 따라오지 말고 소리치지만 그녀도 막무가내입니다. 그는 나무에 올라가 폭탄이 터지기를 기다리지만 폭탄은 터지지 않습니다. 본부에서 더 기다리기로 한 것입니다. 폭파시간은 일요일 오전 8시로 정해졌습니다.

그는 토요일 밤을 해변에서 그녀와 함께 보내고 그녀가 잠자는 사이에 일어나 붐비는 시장으로 갑니다. 막 8시가 되기 직전, 그가 만반의 준비를 마쳤을 때 그를 부르는 사람이 있어 돌아보니 수리점 주인이었습니다. 청년에게 말을 붙이며 다가가는 그에게 청년은 가까이 오지 말라고 외치지만 막무가내입니다. 주인은 그가 뭘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었고 그를 막아보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그에게 다가갔던 것입니다. 장면은 바뀌어 유대인 여자가 잠에서 깨어나 청년이 없음을 보고 시내로 향해 걷는데 시장 쪽에서 커다란 폭음이 들립니다. 청년이 스위치를 눌렀는지 아니면 본부에서 원격조종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폭탄이 터져 청년과 주인 그리고 수십 명이 죽습니다.

죽기 살기로 할 일은 아닌데...

이 영화는 <나의 아버지를 위하여 For My Father>라는 제목의 이스라엘 영화입니다. 제목을 이렇게 붙인 이유가 있지만 제가 하려는 얘기와는 별 상관이 없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는 제게 몇 가지 생각할 점들을 던져주었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외모로 유대인과 아랍인을 구별할 수 없었는데 아마 그들끼리는 쉽게 구별되는 모양입니다. 유대인들은 그가 아랍인인지 첫눈에 알아보고 경계합니다. 특히 경찰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그를 잡아넣으려 하지만 몇몇 유대인들 덕분에 체포도 면하고 거기 머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그가 아랍인이 아닌 듯이, 또는 그런 사실을 모르는 듯이 행동합니다. 유대인과 아랍인의 유전자는 유대인과 한국인의 그것보다 훨씬 더 비슷할 텐데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원수지간으로 만들었을까를 새삼 생각해봤습니다.

   

아랍 청년은 유대인들을 죽일 목적으로 거기에 갔습니다. 영화에서 테러단체 사람이 청년에게 “오십 명의 유대인을 죽이고 네가 죽으면 그보다 더 큰 영광이 없다.”고 말하는 대목도 나옵니다. 그런데 그가 거기서 몇 명의 유대인을 알게 됩니다. 하루 동안의 만남이었으니 서로 깊이 알게 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정도의 만남과 앎만으로도 그들은 서로를 염려하게 됐습니다. 참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청년은 유대인 여자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써서 그녀에게서 멀어지려 했고 수리점 주인은 청년이 뭘 하려는지 알면서도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저는 무엇이 서로 원수지간인 이들을 이렇게 ‘인간적’으로 만들었을까를 생각해봤습니다.

요즘 한국말에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벼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웃자’와 ‘죽자’의 라임(rhyme)이지요. 그냥 한 번 웃자고 한 말인데 그 말을 심각하게 듣고 죽기 살기로 덤벼든다는 말입니다. 저는 우리 주위의 많은 갈등과 분쟁이 ‘웃자고’까지는 아닐지라도 ‘죽자고’ 한 일은 아닌데 거기 목숨 걸고 죽기 살기로 덤벼들기 때문에 벌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에게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물건일 수도 있고 무형의 가치일 수도 있는데 남이 그것을 건드리거나 빼앗으려 하거나 하찮게 여기면 ‘죽자고 달려드는’ 바로 그것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정말 죽기 살기로 매달릴 만한 것인지, 꼭 그래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며 소중히 여기는 걸까요? 또한 소중하다고 해서 꼭 그렇게 죽기 살기로 매달려야 하는 겁니까? 아랍 청년에게 유대인을 죽이는 일은 자기 목숨을 버릴 만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불량 스위치 덕분에 유대인 사회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사람’을 봤습니다. 이전에 이 아랍 청년은 유대인에게서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저 죽여야 할 대상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가 유대인 지역에서 이틀을 지내면서 거기서 ‘사람’을 보았던 것입니다. 어느 영화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사형집행인 얘기를 그린 한 영화에서 한 사형집행인이 “사형당하는 사람 눈을 보지 말라.”고 후배에게 가르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만일 눈을 보게 되면 후에도 죽은 사람이 계속 떠오르고 생각나서 견디지 못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세상일이란 게 참 묘해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사람’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화와는 반대로 우연한 계기로 유쾌하게 ‘사람’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손택수 시인의 ‘가슴에 묻은 김칫국물’이란 시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이 시를 접하고 일주일 내내 시를 생각하며 많이 웃었습니다.

점심으로 라면을 먹다

모처럼 만에 입은
흰 와이셔츠
가슴팍에
김칫국물이 묻었다
난처하게 그걸 잠시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평소에 소원하던 사람이
꾸벅, 인사를 하고 간다.
김칫국물을 보느라
숙인 고개를
인사로 알았던 모양
살다 보면 김칫국물이 다
가슴을 들여다보게 하는구나
오만하게 곧추선 머리를
푹 숙이게 하는구나
사람이 좀 허술해 보이면 어떠냐
가끔은 민망한 김칫국물 한두 방울쯤
가슴에 슬쩍 묻혀나 볼 일이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그들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다보니 정작 중요한 것에는 마음을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바치라는 율법은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마태 23:23)이라고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박하, 근채, 회향의 무게를 달아서 그 중 정확하게 십분의 일을 떼어내는 데 온갖 신경을 다 쓰는 사람들이랍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그렇게 정해져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런 데에 목숨 걸다보니 정작 중요한 정의, 자비, 신의 같은 가치들은 무시해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데에 신경을 과도하게 쓰다보면 ‘사람’이 안 보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정의, 자비, 신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이러한 중요한 가치들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인간적’인 가치들에 목숨 걸고 그것을 지키겠다고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통에 정작 소중한 가치들이 그냥 흘러가버리는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도 그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비유’란 본래 죽기 살기로 읽으라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느닷없는 뒤집기가 있고 풍자가 있습니다. 비유는 죽자고 읽을 게 아니라 웃자고 읽는 게 맞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두들겨 맞아 반쯤 죽게 됐습니다. 그 곁을 제사장 한 사람이 지나갔는데 돌보지 않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강도당한 사람을 봤지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냥 지나간 것입니다. 그 다음에 레위 사람이 지나갔는데 그도 제사장처럼 그냥 지나가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그는 앞의 두 사람과는 달리 그를 나귀에 싣고 여관으로 데려가서 여관주인에게 그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목사들과 학자들이 이 비유를 제사장, 레위인과 사마리아 사람을 대조하는 뜻으로 읽어왔습니다. 저도 그렇게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우월하다고 뻐기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정작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을 그냥 지나쳤는데 그들이 멸시해온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돌보아줌으로써 하나님의 율법을 지켰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해석도 물론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진정 말씀하고 싶었던 내용은 두 부류의 사람들을 구별하는 것보다는 그 사건에서 ‘사람’을 보는가 여부가 아니었을까요? 제사장, 레위인은 문자적 계명에 충실하려다 보니 사람을 보지 못했던 데 반해서 사마리아 사람은 문자적 계명을 몰랐기 때문에(혹은 그 이상을 알았기 때문에) 강도당해 쓰러져 있는 자에게서 ‘사람’을 봤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제사장도 사라지고 레위인도 어딘가로 없어지고 심지어 사마리아 사람의 정체도 사라지고 사람만 남았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세상일이란 것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계획했던 일이 어그러지기도 하고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불량 스위치 하나 때문에 아랍 청년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을 경험했습니다. ‘원수’에게서 ‘사람’을 봤던 것입니다. 밥 먹다가 우연히 셔츠에 묻힌 김칫국물 덕분에 소원했던 사람과 사이가 좋아지기도 합니다. 김칫국물이 ‘사람’을 보게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세상 일이든 신앙의 일이든 ‘사람’을 보게 하는 쪽으로 열어놓을 일입니다. 결국은 사람을 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얼굴도 거기서 보일 것입니다. 거기가 아니면 또 어디서 볼 수 있겠습니까! ♣

곽건용 (사회 78, 향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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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8)
  훈장님 좋은 글 덕분에 좋은 영화를 보았습니다. 오래 기억에 남을 영화네요. 강국 2012-02-10 22:31:59
몸이 안 좋아서 (총동창회 모임에서 너무 날뛴듯) ill out 하고
오랜만에 Netflix에서 들어갔는데 마침 이 영화가 추천 목록에 뜨더이다.
한시간 반 동안 숨죽이고 봤습니다. 아주 잘 만든 영화에요.
스토리라인, 구성, 연기, 음악, 미술적 면까지. 무엇보다 강렬한 메세지. 그짧은 순간에 서로 친구가 될만큼 같은 사람들인데, 왠수로 알고 산다는. 악마 테러리스트의 사진 뒤에 감춰진 인간의 모습-치환가능한 감정.강추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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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XXX.XXX.126)
  사실 난 이스라엘 영화 별로 안 보는데 곽건용 2012-02-12 11:10:49
어쩌다 보고 얘깃거리를 찾아냈지요. 이스라엘 영화 안 보는 것도 제 편견이지요. 거기라고 아랍인들, 팔레스타인 사람들 다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하지만 무의식에서 나왔는제 어쨌는지 이 영화도 이스라엘 냄새가 쏠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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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54)
  불량스위치와 김칫물을 통해 사람을 볼 수 있다면, auramon 2012-02-10 16:37:41
마음 가짐에 따라 사람을 볼 수 있게 하는 매개체는 주변에 널려있겠군요. 80억이나 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본다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기회도 널려있겠군요. 그저 독불장군 처럼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나, 자신이나 자신의 생각에 도취해서 남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문호가 과히 개방되어 있지 않겠네요. 하나님을 보려면 사회적 존재가 되어라.. 그런 결론이겠군요? 제 해석이 좀 무리하지요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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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XXX.XXX.59)
  이렇게 제 맘을 알고 스스로 결론내리는 분들을 믿고 곽건용 2012-02-12 11:05:33
저는 가급적 딱 부러지는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뭔가 확실하게 말해 달라고 청하는 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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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54)
  글쓰신 분에 의하면 박찬민 2012-02-12 10:31:25
'종교는 곧 초월적 존재를 향한 수행과 타인에 대한 관심이다.'라고 합니다. 윗글 바로 전주의 설교중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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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230)
  "초월적 존재를 향한 수행과 타인에 대한 관심" auramon 2012-02-13 14:07:35
결국 자신에 대한 관심을 밖으로 돌릴 것을 권면하는 말이군요. Escape from ego.. 이런 맥락으로 이해됩니다.
타인에 대한 관심.. 찔립니다. 호기심과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남들을 꼬치꼬치 알고자 하는 nosiness 와는 반대의 의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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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XXX.XXX.219)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상희 2012-02-09 22:08:12
그런데 '외모로 아랍인과 유대인을 구별할 수 없었다'는 부분에서 생각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겉으로 봐서 한국사람인지 일본사람인지 어떻게 아느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거든요. 딱 집어 말할 기는 힘들지만 분명히 티가 나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데... 아타의 구분이 생사를 가름할 정도로 중요했던 우리 구한말 역사, 아직도 생사가 달릴 정도로 중요한 그네들의 현재가 겹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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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XXX.XXX.43)
  관동지진관련 조선인 대학살 당시 스피노자 2012-02-12 22:12:05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색출해서 집단학살하려고 할 때 외모로는 구분이 잘 안되어 한국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본어발음으로 판단기준을 삼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일본인, 말을 더듬거나 발음이 부정확한 일본인들고 많이 학살당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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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XXX.XXX.254)
  하긴 누가 가족인가 하는 점도 곽건용 2012-02-12 11:07:49
점점 모호해지는 세상이니까 누군가를 어떤 기준으로 구별하고 구분하는 일이 점점 더 부질없어지는데 이해관계에 얽히면 꼭 구별하려 하더군요. 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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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54)
  삶이 겹칠수록 민감해지지요. 박찬민 2012-02-12 10:26:54
가족이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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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230)
  Life turns on a dime. 오달 2012-02-09 15:39:22
이럴 때 딱 맞는 말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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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XXX.XXX.72)
  선배님이야말로 곽건용 2012-02-09 15:56:25
자주 좋은 글 올려주셔서 잘 읽고 있습니다. 댓글도 못 달 때가 많은데.... 엊그제 번개, 즐거웠습니다. 담에는 라이센스 있는 집에서 만나면 더 분위기가 좋을 거 같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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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78)
  햐~ 갑자기 세상이 밝아져온다. 김성수 2012-02-09 11:16:05
저의 머리를 맑게하고 깨끗이 닦아주는 느낌이 듭니다. 매일 깨끗이 씻는 것도 중독성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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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XXX.XXX.16)
  이번에 총동창회를 위해 격무에 시달릴텐데 곽건용 2012-02-09 15:54:38
머리라도 맑아져야지 않겠습니까! 한바탕 회오리 바람이 몰아칠 거 같은 예감이 드네요. 기대 만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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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78)
  요즘 글을 읽다가 눈물 찔끔 워낭 2012-02-09 02:13:39
흘리는 일이 잦네요. 아마도 그러고 싶은 감정이 있기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작은 것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오늘도 '웃자고 한 일(말)에 죽자고 덤벼든다' 여기에 뻑 갔고요, 그리고...김칫국물 고개숙인 거룩한 의미에 두번 죽었습니다. 아~~이렇게 매일 뻑 가면서 웃으며 살면 좋겠네요. 즐거운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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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232)
  찔끔 흘린 눈물 닦다가 곽건용 2012-02-09 15:53:06
예상치 않았던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들지 말자'가 엊그제 만나 얘기했던 여러가지 문제 연구소 소장의 모토라고 생각합니다. 뭔 얘긴지 아는 사람만 알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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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78)
  평소에도 김칫국물을 김종하 2012-02-09 00:26:05
그리 두려워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만, 영혼관리위원장님 말씀에 오늘은 김칫국물이 더 정겹네요.^^ 서로 '사람'을 보며 살기만 한다면야...
빙그레 웃음이 가시지 않는 시 한 수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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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XXX.XXX.121)
  내가 자주 김칫국물을 흘리곤 해서 곽건용 2012-02-09 15:51:05
이 시가 더 정겨웠던 모양입니다. 근데 제게는 소원했던 사람이 꾸벅하기보다는 '칠칠치 못하다'는 핀잔이 더 자주...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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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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