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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노래함은 영원의 작은 조각 하나 맛보는 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윤동주의 시와 진리
2011년 12월 13일 (화) 17:10:24 민경훈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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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민족시인 문학의 밤' 행사가 문인 등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달 피라미드 레익 RV 리조트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미주 한국일보 논설위원 민경훈 동문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윤동주의 시와 진리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강연 내용을 정리해 소개한다. <편집자 주>

   
피라미드 레익 리조트에서 열린 제8회 민족시인 문학의 밤에서.

나쁜 날씨에도 불구하고 먼 곳까지 와주신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저를 불러 주신 윤동주 문학선양회 미 서부지회장이신 이성호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윤동주가 뽑혔다 합니다. 27살의 꽃다운 나이에 불령선인으로 체포돼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한 그는 모든 한국민의 사랑을 받는 시인의 하나에 틀림없습니다.

그가 쓴 시의 대부분은 그가 죽은 뒤 출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실려 있습니다. 이 시집에 실린 여러 시 가운데서도 대표작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은 ‘서시’를 택할 것입니다. 실제로 그를 기념하기 위해 모교인 연세대와 용정중학교에 세워진 시비에는 어김없이 ‘서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시지만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전문을 인용하겠습니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저는 이 짧은 글 한편에 윤동주 문학의 에센스가 모두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는 윤동주 문학뿐 아니라 위대한 문학의 공통된 진리가 함축돼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진리는 결국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의 여러 행 가운데서도 요체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이 부분에 대한 해설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부분입니다. 이 구절을 읽을 때 어떤 장면이 떠오르십니까. 저는 최초의 위대한 서양 문학 작품인 ‘일리아드’, 그 중에서도 트로이의 왕 프리암이 자기 아들 헥토르를 죽인 아킬레스의 진지를 찾아가 그의 발을 붙잡고 아들의 시체를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그를 불쌍히 여긴 아킬레스는 이를 허락하고 헥토르의 장례가 끝날 때까지 전투를 중지할 것을 약속합니다.

아킬레스는 트로이 전에 출정하기 전 ‘이 전쟁에 나가면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대신 불멸의 명성을 얻을 것이요 나가지 않으면 이름은 없지만 편안한 노후를 맞을 것’이란 계시를 받고 고민하다 결국 전쟁에 나갑니다. 그는 당장은 자기가 헥토르를 죽였지만 머지않아 자기도 헥토르와 같은 운명을 맞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전쟁에서 이긴 사람이나 진 사람이나 결국 언젠가 죽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헥토르도, 아킬레스도, 프리암도 모두 ‘모든 죽어가는 것’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어가는 존재’라는 사실이 ‘모든 인류는 운명 공동체’라는 진리를 가능케 합니다. 공자는 인간의 덕 중 으뜸으로 ‘인’을 들었고 맹자는 ‘인’의 시작을 측은한 마음에 찾았습니다. 인간 사회를 지탱해 주는 가장 기본적인 유대는 같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고 인간에 대한 사랑은 같이 ‘죽어가는 것’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그 기초라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너그러움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습니다. ‘대자’와 ‘대비’가 항상 붙어 다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불쌍한 놈’인 것입니다.

‘일리아드’가 위대한 것은 인간이 처한 조건을 어떤 변명이나 분칠도 없이 정직하게 정면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옛날이든 지금이든, 동양이든 서양이든 세계의 기본적인 구조와 인간이 처한 상황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에 관한 성찰인 문학적 진리가 언제 어디서나 같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 다음 구절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유대교는 물론이고 기독교와 회교도 아브라함과 야훼가 맺은 언약과 함께 시작됐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 야훼가 아브라함에게 내린 첫 번째 명령은 무엇입니까. “가라”였습니다. 야훼 명령의 표면적인 뜻은 지금 살고 있는 땅을 떠나 내가 약속한 땅으로 가라는 것이지만 더 깊은 뜻은 너에게 주어진 인생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야훼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두려워 말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두 명령을 합치면 “두려워 말고 네게 주어진 길을 가라”가 됩니다. ‘인류는 운명 공동체’라는 사실과 ‘두려워 말고 네 길을 가라’는 서양 문학과 종교의 핵심 메시지인 셈입니다.

서양의 음악가 하면 사람들은 베토벤을, 그의 대표작을 들라면 제9번 교향곡 ‘합창’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합창’은 아시는 대로 실러의 시에 곡을 붙인 것입니다. 이 곡은 유럽 연합의 국가이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의 하나입니다. 언제 들어도 강렬한 감동을 주는 이 곡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노래도 노래지만 가사에 담긴 메시지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 생각합니다. 실러의 원작을 베토벤이 일부 수정한 ‘기쁨 송’(Ode an die Freude)은 ‘기쁨, 신의 아름다운 불꽃이여’라고 시작되는데 그 요체는 ‘모든 인류는 한 형제가 된다’(Alle Menschen werden Brüder)와 ‘형제여, 승리를 향해 나가는 영웅처럼 즐겁게 네 길을 달려가라’(Laufet, Brüder, eure Bahn, Freudig, wie ein Held zum Siegen.)입니다. 이 작품은 ‘인류는 한 형제’와 ‘네게 주어진 길을 가라’ 이상의 감동적인 메시지는 없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줍니다.

윤동주 문학의 핵심이라고 지적한 부분 가운데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가 남았습니다. 윤동주 시집 제목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가운데 가장 중요한 단어는 무엇일까요. 저는 ‘별’이라 단언합니다.

한국에 별을 사랑한 시인으로 윤동주가 있다면 서양에는 단테가 있습니다. 기독교 문학의 정점인 그의 대표작 ‘신곡’은 절망에 빠진 단테가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하며 구원을 찾는 것이 줄거리입니다. 이 작품은 ‘지옥’과 ‘연옥’, ‘천국’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 ‘지옥’의 끝은 ‘E quindi uscimmo a riveder le stelle’ 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별을 보기 위해 나왔다’는 뜻입니다.

2부 ‘연옥’은 어떻게 끝납니까. ‘puro e disposto a salire a le stelle.’ 입니다. ‘별로 올라갈 자격이 있을 정도로 순결해졌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천국’은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 (‘l'amor che move il sole e l'altre stelle.’) 이란 구절과 함께 마무리 됩니다. 이것이 우연일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대표작 한부 한부가 끝날 때마다 별로 마침표를 찍어 별에 대한 자신의 지극한 사랑을 표시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서양 문학에 ‘큰 별’ 단테가 있다면 서양 철학의 ‘큰 별’로는 칸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의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렵습니다. 그런 그가 보통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사상을 쉬운 말로 요약한 적이 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 마음을 경이로움으로 채우는 것이 둘 있다. 하나는 밤하늘의 별이요 또 하나는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다”가 그것입니다.

단테와 칸트와 윤동주가 별밤을 사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빛의 속도로 날아가도 우리 살아생전 다다를 수 없는 별은 우선 무한의 상징입니다. 또 수 십 억년 넘게 반짝이는 별은 영원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광대한 우주와 영원의 상하에서 내려다볼 때 인간 사회가 안고 있는 온갖 문제와 나를 괴롭히는 자질구레한 일상사는 절대적으로 하찮은 것임을 별은 가르칩니다. 별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우리 몸이 이를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요.

별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몸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물이고 물 무게의 대부분은 산소입니다. 산소는 물론이고 인간의 피 속에 녹아들어 산소 공급에 절대적인 역할을 해주는 철분을 비롯한 주요 원소들은 아주 먼 옛날 먼 어느 별 한 가운데서 핵융합 반응의 결과 생성된 것입니다. 이것이 초신성 폭발로 우주 어느 곳엔가 흩어졌다 다시 모여 우리 몸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모두 별의 아들과 딸이며 별은 인간을 위시한 존재의 고향인 셈입니다. ‘별들의 고향’이 아니라 ‘별들이 고향’인 것입니다.

오늘은 날이 잔뜩 찌푸려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날도 별들은 구름 뒤에서 빛을 뿜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빛을 발하는 별은 진리와 희망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짙은 어둠도 보석처럼 빛나는 별의 광채를 이기지 못합니다. 당장의 삶이 고단해도 하늘 위 어디엔가 꺼지지 않는 빛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별들은 조용히 알려줍니다.

인간은 찰나의 인생을 사는 존재지만 그러면서도 영원을 꿈꿉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영원의 아주 작은 조각 하나를 맛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의 하나가 아닐까요. 이를 일깨워주는 것이 윤동주와 모든 위대한 문학의 한결같은 메시지라고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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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4)
  박진임 2011-12-14 23:42:01
이 그냥 아름다움만 뜻하는 것이 아니었군요. 이렇게 다양한 고전을 통해 보면 매우 심오한 것이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추천1 반대0
(216.XXX.XXX.191)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박봉현 2011-12-14 09:16:14
시의 시작이고 철학의 바탕이고 종교의 뼈대입니다. 죽는 날까지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민위원, 잘 읽었습니다.
추천0 반대0
(38.XXX.XXX.253)
  하늘을 우러러 오달 2011-12-13 11:09:09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중학교 때 이 시를 처음 읽고 이 구절을 새겼는데...
저는 서시의 첫 부분을 좋아합니다.
추천1 반대0
(108.XXX.XXX.72)
  영원한 나의고향! 밤하늘의별 ! 을 떠올리게 하는 김석두 2011-12-13 02:27:00
윤동주시인의서시를 속쉬원하게 풀이 해주신 감동의글을 읽으며 한밤중의 나의잠을 깨어나게 하였습니다.지난여름 연길시용정에있는 대성학교 윤동주시비와기념관과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제7기 독립정신답사단(대한임시정부기념사업회)의 일원으로 답사하였었기에 66주년 추모제 참뵈를하였던때를 회상하며 그"서시'를 기도문처럼 하루에도몇번씩 암송합니다 내일부터.갓 8살,6살된 두손자들에게'서시'를가르치렵니다.감사합니다
추천1 반대0
(68.XXX.XXX.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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