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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 자체가 최고의 선물”
[삶과 영성] 진정한 감사, 텃밭이라도 일구기부터
2011년 12월 05일 (월) 14:29:39 곽건용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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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Guzaarish)

이썬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당대 최고 마술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라이벌 마술사이자 친한 친구 야쎄르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마술하다가 공중에서 떨어져 전신이 마비되고 맙니다. 이썬이 공중에 떠 있을 때 야쎄르가 사람을 시켜 이썬이 매달려 있던 피아노 줄을 끊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무려 14년 동안 꼼짝도 못하고 침대와 휠체어 생활을 합니다. 그는 자기 힘으로는 콧잔등에 앉은 파리 한 마리도 쫓아내지 못합니다. 이만하면 대개는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했겠지만 두 가지 장점이 그를 버티게 만들어줬는데 매사에 긍정적인 그의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가 그 하나이고 친구들이 그 다른 하나였습니다. 12년 동안 그의 곁을 지키며 손발이 되어주었을 뿐 아니라 소울 메이트가 되어준 간호사 소피아, 친구이자 주치의 나약, 변호사이면서 가장 가까운 친구인 데브야니가 그들입니다. 이썬은 수많은 강연과 매일 하는 개인 라디오방송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주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사고가 난지 14년 되던 기념일이 친구들에게 폭탄선언을 합니다. 법원에 존엄하게 죽기(euthanasia)를 청원하겠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침대에 누워 있거나 휠체어에 앉아 꼼짝도 못하고 사는 것을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건강한 사람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긍정적으로 밝게 살아온 그가 죽겠다고 하니 말입니다. 사실 그는 스스로 죽지도 못하는 처지입니다. 전신마비환자니 남이 죽여줘야 죽을 수 있습니다. 친구들은 극구 말렸습니다. 소피아는 물론이고 변호사 데브야니도 의사 나약도 모두 말렸지만 그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썬은 회복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처지였고 존엄하게 죽겠다는 그의 의지가 매우 강함을 알고 친구들은 그를 돕기로 합니다. 놀라운 일은 이썬의 어머니 이사벨도 아들 편에 섰다는 사실입니다. 그 와중에 오마르라는 젊은이가 그에게 마술을 배우겠다고 왔습니다. 이썬은 처음에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마술을 향한 그의 열정이 매우 강렬함을 보고 그를 생애 마지막 제자로 받아들입니다. 나중에 알려지지만 그는 이썬을 불구자로 만든 친구 야쎄르의 아들이었습니다.

법원은 자비롭게 죽여 달라는 그의 청원을 즉각 기각했습니다. 현행법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데브야니는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서 다시 한 번 청원하자고 제안합니다. 이썬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그의 처지를 알리고 청취자들로 하여금 그의 죽음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투표하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방송이 나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전화해오는데 전부 이썬의 죽음에 반대하는 의견이었습니다. 그가 받은 첫 번째 찬성의견은 과거에 그의 마술보조이자 애인이었던 에스텔라였습니다.

이썬이 자비롭게 죽여 달라고 청원했다는 사실이 뉴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법원은 재청원을 받아들였고 이번에는 이썬의 사정을 고려해서 그의 집에서 심리를 진행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썬의 어머니와 친구들이 증언을 했습니다. 증언이 모두 끝나자 판사는 이썬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는 마술을 보여주겠다며 한 사람이 몸을 구부리고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궤짝 하나를 갖다놓고서 검사에게 그 안에 들어가기를 청합니다. 그 안에 들어간 후 60초가 지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며 말입니다. 이썬은 주문이랍시고 별 의미도 없는 말을 늘어놓는데 궤짝 안에 있는 검사는 두려움에 빠져 당장 자기를 꺼내달라고 소리소리 지릅니다. 놀란 판사도 당장 그를 꺼내라고 명령하지만 이썬은 끝내 60초를 채우고 나서야 궤짝을 열고 이렇게 말합니다. “60초입니다. 겨우 60초. 당신은 그 안에서 겨우 60초 있었을 뿐입니다.”

그 얼굴과 웃음에 가득한 감사

그 와중에 어머니 이사벨이 죽고 소피아는 알콜 중독자 남편에게 끌려갑니다. 이썬은 가장 사랑하고 의지하는 두 사람을 잃은 채 쓸쓸히 머물던 중 재청원까지 기각당합니다. 얼마 후 소피아가 이혼하고 이썬에게 돌아왔을 때 그는 적막한 집에서 외로이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소피아는 이썬의 죽음을 돕겠다고 말합니다. 이썬은 그때서야 자기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지 깨닫고 그녀에게 청혼을 했고 소피아는 이를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이썬이 죽는 날까지 함께 하기로 약속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이썬이 친구들을 초청하여 고별파티를 여는 장면입니다. 이썬은 친구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그들이 자기에게 어떻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를 말하고 나서 소피아와의 결혼을 발표합니다. 이 말은 듣고 모두들 놀랐지만 곧 진심으로 축하해주었고 소피아는 이썬을 돌보는 사람이 아니라 아내로서 그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입을 맞춥니다. 이썬은 자기는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살았고 죽어간다고, 그에게는 아무 후회도 없다고 말하지요. 이 말을 듣고 친구들은 한 사람씩 이썬에게 다가가 그를 안아줍니다. 영화를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여주며 끝납니다.

이 영화는 <구자리쉬 Guzaarish>라는 인도 영화입니다. 힌두어로 ‘청원’(Request)이라는 뜻이랍니다. 제가 감사절에 어울리지 않는 존엄한 죽음에 관한 영화 얘기를 한 까닭은 단 하나, 마지막에 환하게 웃는 이썬의 얼굴과 웃음소리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기독교인의 감사가 다 같지는 않습니다. 감사는 종류도 많고 수준도 다양합니다. 무엇인가 대단한 것이 주어졌기 때문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별 것 아닌 것에도 감사와 감동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감사하는 수도 있습니다. 버지니아의 한 병원에 쓰여 있다는 다음의 기도문은 또 다른 감사의 차원을 보여줍니다.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건강을 구했는데
보다 가치 있는 일 하라고 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해 지고 싶어 부를 구했더니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삶을 누릴 모든 걸 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삶 자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구한 것 하나도 주시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했지만 마음속에 진작 표현 못한 기도는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장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이 기도의 핵심은 “삶을 누릴 모든 걸 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삶 자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라는 구절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일용할 양식도 아니고 그것을 살 돈도 아니며 지위나 명예도 아니고 성공이나 출세도 아닙니다. 심지어 신앙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은 삶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장 크게 감사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삶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우리의 삶 자체에 대해서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정말 그렇습니까? 삶에 감사한다는 것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것은 감사할 일이지만 죽음은 그 반대는 아니란 말씀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이썬은 그렇게 환하게 웃을 수 없습니다.

2002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는 다니엘 카니만(Daniel Kahneman)은 심리학자이기도 합니다. 이번호 <타임> 잡지를 보니까 그는 지난달에 ‘Thinking, Fast and Slow’라는 책을 냈더군요. 그는 이 책을 ‘왜 사람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나?’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썼다고 합니다. 인터뷰어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사람들은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천천히 생각하기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뭔가를 느끼는 것입니다(Slow thinking has the feeling of something you do)……. 이런 일은 빠르게 생각할 때는, 예를 들면 갑자기 자동차 브레이크를 밟을 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터뷰어가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은 사람들은 천천히 생각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우리가 저지르는 가장 큰 잘못은 무엇입니까?” 그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우리가 소경이란 사실에 대해 소경입니다(We are normally blind about our own blindness). 우리는 대체로 우리 의견과 인상과 판단을 과신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다 알 수 있다고 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얼마나 스스로 소경이란 사실에 대해 소경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지를 보여주는 예를 들었습니다. 테러가 한창이던 1990년대 타일랜드에서 팔린 보험 상품 얘기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사망하기만 하면 10만 불을 지급하는 보험 상품보다 테러를 당해서 사망했을 때 10만 불을 주는 보험의 보험료가 더 비쌌는데도 불구하고 후자가 더 많이 팔렸답니다. 후자보다 전자가 훨씬 더 죽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말이죠.

텃밭이라도 일궈야 삶 그 자체에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

저는 이 인터뷰 기사에서 “천천히 생각하기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뭔가를 느끼는 것입니다.”라는 말에 속된 말로 확 꽂혔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느끼지’ 못하면서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제 머리를 때렸습니다. 우리는 모두 일을 합니다. 꼭 월급을 받는 직장을 가져서만도 아니고 자기 사업체를 운영해서만도 아닙니다. 집안일을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품격 있게’ 만들지 못합니다. 아니, 품격 있게 만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하는 일을 평가 절하합니다. 현대인은 ‘실업자’가 되기를 바라며 일한다고 말한 사람은 웬델 베리입니다. 사람들은 일이 끝나는 퇴근시간을 위해서, 주말과 휴가를 위해서, 더 나아가서 은퇴할 때를 기다리며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가치 있거나 유익해서가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그만 둘 때를 기대하며 일한다는 얘기입니다. 일하는 것이 즐겁고 보람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끝나는 시간만 바라보며 일하니 그것이 ‘지옥벌’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베리는 말합니다.

무엇이 우리네 일(노동)을 이렇게 ‘품격 없이’ 만들어놨을까요? 답은 분명하고도 간단합니다. 그것은 ‘탐욕’입니다. 탐욕이 노동의 품격을 한없이 낮춰놓았습니다. 더욱이 자본주의사회는 탐욕을 좋은 것이고 바람직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탐욕이란 말을 쓰지 않고 살짝 바꿔놓았지만 내용은 결국 탐욕입니다. 이런 현실은 교회 전통과도 크게 어긋납니다. 과거에 교회는 탐욕, 분노, 시기, 정욕, 탐식, 교만, 나태를 ‘7대 악’으로 규정하고 경계해 왔습니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이 7대 악이 없으면 돌아가지를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원동력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우리는 이런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적어도 우리는 우리가 소경이란 사실에 대해서만큼은 소경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먹을거리 하나만 생각해도 우리가 얼마나 눈뜬 소경인지, 우리가 하는 일을 느끼지 못하고 빠르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즘 마켓에서 파는 먹을거리가 얼마나 쌉니까. 상상도 할 수 없이 싸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 먹을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마켓까지 왔는지 모릅니다. 알고 보면 실상 우리가 식품이라고 먹는 것들은 뭔지도 모를 내용물의 범벅입니다.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이 사실 어떤 재료로 색깔이 입혀졌는지 모르고 정체불명의 빵가루와 소스와 고기즙을 뒤집어쓰고 있으며 엄청난 양의 방부제과 살균제를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웬델 베리는 아주 조금이라도 스스로 먹을거리를 길러보라고 조언합니다. 마당이 있으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작은 베란다나 볕이 잘 드는 창가에 화분이라도 갖다 놓고 직접 먹을거리를 길러 보면 삶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달라질 거라고 베리는 말합니다. 먹을거리를 조금이라도 직접 길러보면 흙에서 씨앗으로, 씨앗에서 꽃으로, 꽃에서 열매로, 그리고 그것이 음식으로 상에 올라왔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물질과 에너지의 아름다운 순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뭔가를 ‘느끼는 일’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지 않고 사람들 각자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몸이 바로 하나님이 계신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몇 해 전에 돌아가신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은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먹을거리는 자연에서 얻는다면서 권 선생님은 우리가 공기를 숨 쉬고 물을 마시고 온갖 동식물을 잡아먹고 살아가니 자연에 있는 온갖 것들이 우리 몸속에 들어와서 살이 되고 피가 되어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내가 살아간다는 사실은 곧 자연이 내 몸속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곧 나는 자연의 일부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는 것이지요. 예수께서 사람들 속에 당신이 계시고 당신 속에 사람들이 있다고 하신 말씀은 진정 옳은 말씀입니다.

요즘처럼 빠르게 살아서는 우리가 하는 일에서 뭔가를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서 뭔가를 느끼지 못하면서 삶 그 자체를 감사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그저 무엇이 주어졌기 때문에 감사하는 낮은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고 그것은 그 자체가 탐욕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탐욕으로 전락하기 십상입니다. 이걸 낮은 수준의 감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뭔가가 주어지지 않으면 감사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삶 자체를 감사하며 산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죽음이 감사를 앗아가는 조건이 되지는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영화 <청원>에서 스스로 죽지도 못하는 이썬이 마지막에 환하게 웃는 모습은 그가 자신의 삶과 죽음을 얼마나 감사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삶 자체를 감사하며 살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탐욕을 버려야 할 죄악이 아니라 추구해야 할 ‘가치’로 여기는 사회가 우리가 사는 사회입니다. 우리는 탐욕을 부추기는 사회에 살고 있고 불가피하게 거기 물들어 있습니다. 이럴 때 우선 중요한 것은 적어도 내가 소경이란 사실에 소경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내가 소경이란 사실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더 나아가서 세상과 인생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천천히, 내가 하는 일에서 뭔가를 느끼면서, 몇 가지 먹을거리라도 스스로 키워보자는 얘기입니다. 먹을거리가 달라지면 생각도 삶도 달라지고 삶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도 달라지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곽건용 (사회 78, 향린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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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5)
  하루 하루의삶을 하느님께 감사드리며1 김석두 2011-12-08 22:43:39
살아갈 지혜의글을 잘읽고 묵상해봅니다.그러나 실천하지않으면 죽은 신앙이지 참된 신앙이라고 할수없다는 인식을 하고있습니다. 탐욕과 부귀를쫓는 이민문화의 자화상을 맹성케하는 영적깨우침을 항상 아크로에 실어주시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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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XXX.XXX.38)
  가만히 생각해 보면 auramon 2011-12-05 18:05:57
삶은 허구 내지 virtual reality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joke 로 아무렇게나 생겨난 넌센스 같기도 하고, 엄청난 저주 같기도 하고, 우주적 사건이며 무한한 은혜인 것 같기도 합니다.
PICK ONE.. IT's UP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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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XXX.XXX.60)
  선택 여하에 따라 auramon 2011-12-05 18:09:25
불교적, 도교적, 실존적, 허무주의적, 염세주의적, 혹은 낙관론적 인생관을 갖게 되겠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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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XXX.XXX.60)
  삶은.... 곽건용 2011-12-06 12:37:40
허구이면서 동시에 virtual reality이고, 누군가의 joke이면서 아무렇게나 생겨난 넌센스이며, 엄청난 저주이면도 동시에 무한한 은혜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제 인생관은 불교, 도교, 실존, 허무주의, 염세주의적이며 동시에 무한히 낙관적입니다. 이것이 저의 기독교적 인생관입니다. 한 마디로 비빔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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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181)
  비빔밥은 섞여야 제맛 auramon 2011-12-06 16:49:54
모든 ingredients 를 다 선택하시니 현명하시군요. I agree.
추천0 반대0
(67.XXX.XXX.60)
  아크로에서 박봉현 2011-12-05 14:25:46
동문님의 뜨거운 글을 읽을 수 있는 게 감사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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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XXX.XXX.220)
  그 날 여우비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곽건용 2011-12-06 12:34:15
담에 오실 때도 또 여우비??? 장소야 어디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오시면 연락해주세요. 뜨거운(!!) 마ㄴ 남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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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181)
  시력이 점점 나빠지니 auramon 2011-12-05 11:43:55
소경이 되어가는 중인가 봅니다. 소경임을 확실히 알게 되는 날이 오면 어쩌지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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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XXX.XXX.60)
  소경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는 바로 그날..... 곽건용 2011-12-06 12:32:05
그대는 눈뜨게 되리라. 내가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일뿐임을!!!! 도사 흉내 한 번 내봤습니다. 선배님 보내주시는 메일은 잘 받아보고 있습니다. 그 모임에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계속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쫌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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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181)
  목사님처럼 도사가 되신 분에게는 auramon 2011-12-06 16:53:36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모임일겁니다. 이른바 정통교리를 강론하는 곳인데 자유토론을 즐길만큼 열린 마음의 소유자들이 그리 흔하지 않은지라..
어쩌다가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인 예수의 도가 부자유하게 하는 어색한 이론이 되었는지 안됐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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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XXX.XXX.60)
  제게 보내주신 몇 편의 메일로 미루어보니 곽건용 2011-12-06 17:48:27
선배님은 그 모임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같던데요. 왜 선배님은 되는데 저는 안된다 하시는지... ㅎㅎ 사실 제가 김세윤 교수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바울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걸로 알고는 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는데 이래저래 분주해서 그만.....
추천0 반대0
(66.XXX.XXX.181)
  요새 영혼 관리는 오달 2011-12-05 10:51:15
동면 모드입니다.
한 순간 한 순간 살아가는 일에 몰두하기 위해서,
살아 있다는 것이 감사해야할 "범사"에 해당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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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XXX.XXX.72)
  영혼이..... 곽건용 2011-12-06 12:29:34
관리받기 싫다는데요, 적어도 이 계절에는. 생명에 대한 감사는 생명을 만지고 가꾸는 데서 가장 찐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정작 마당에 아무 것도 심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곧 착수하려고 합니다.
추천0 반대0
(66.XXX.XXX.181)
  영혼관리위원장님의 김종하 2011-12-04 21:45:28
감사절 메시지, 감사절은 지났지만 한 해를 정리하는 12월 내내 곱씹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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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XXX.XXX.144)
  영혼관리위원장 노릇을 제대로 못한 거 같아서리.... 곽건용 2011-12-06 12:27:45
씁쓸합니다요. ㅎㅎ 12월 내내 곱씹어보시고 뭐 단물이라도 한 방울 나오면 알려주십시오. 궁금합니다, 뭐가 나올지.
추천0 반대0
(66.XXX.XXX.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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