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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와 순이의 민란
10.26 서울시장 선거는 고려시대 '만적의 난'을 떠올려
2011년 10월 28일 (금) 00:11:05 김근철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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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수와 순이'의 민란, 그 이후 한국 정치 >

 김근철 한미정치포럼 대표


1198년 고려 신종 때. 당시 최고 실력자 최충헌에게 만적이란 노비가 있었다. 어느날 그는 개성의 북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주위의 동료들을 불러모았다. 영문을 모른 채 모여든 노비들을 향해 그는 이렇게 일갈했다.
“세상에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어디 따로 있을까 보냐. 때가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 

<고려사>는 만적의 이 말에 주변의 노비들은 모두 감동을 받아 함성을 지르며 힘을 합쳐서 거사에 나설 것을 결의했다고 전한다. 800여년 전 노예혁명을 꿈꾸며 일어났던 만적의 난은 이렇게 시작됐다. 물론 거사는 사전에 발각돼 물거품이 됐다. 그래도 ‘왕후장상의 씨가 어디 따로 있느냐’ 던 그의 목소리는 당당히 역사의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당연시 되던 권력의 지배, 피지배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한 저항 언어로 말이다.

한동안 한국을 뜨겁게 달궜던 10.26 서울시장 재선거가 끝났다. 승리는 시민운동가 박원순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여야 정당을 모두 거부한 채 시민 후보를 자처하며 선거에 나섰다. 예선에서 민주당 박영선 의원을 꺽어 범야권 단일 후보가 되더니, 본선에선 여당인 한나라당의 총력지원을 받은 나경원 의원까지 물리쳤다.

시민후보에게 여야 거대 정당들이 모두 나가 떨어진 셈이다. 과거에도 간혹 무소속 돌풍이 있었다. 박찬종 전 의원이 대표적인 경우다. 하지만 그도 직업은 정치인이다. 그러나 이번엔 얘기다 다르다. 의도적으로 정치인과 정당을 거부한 시민 후보로 나서 서울을 장악한 것이다. 대한민국 정당사에 일찍이 없었던 파란이자 일대사건이다.

승자는 또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만해도 유명 강사, 국민 멘토 정도로 불렸던 안철수다. 그도 정치인이 아니다. 아니, 정치인이란 표현을 거부한다. 서울 시장 선거 과정과 그 결과를 지켜보며 문득 만적을 떠올리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들은 지금 “대통령, 서울시장, 국회의원을 정치인이 도맡아 하란 법이 어디 있느냐. 한심한 정치인들을 몰아 내고 건전한 시민들이 정치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21세기형 민란을 서울 한복판에서 일으켜 성공한 셈이다.  ‘(안)철수와 (박원)순이’의 드라마같은 승리다.

필자가 ‘철수와 순이의 난’이란 별칭을 붙이고 싶은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 철수와 순이다. 상당수 유권자들은 그 흔한 이름만큼 만만해보이고,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두 사람에게 열광했다. 특히 20대에서 40대 유권자들은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이들은 한국의 정치가 빚어낸 이념대립과 지역주의에 비교적 자유로운 세대들이다. 구태의연한 정치에 대한 거부감과 냉소주의가 점차 팽배해지던 상황이었다. 철수와 순이의 반란은 이들에게 탈출구와 카다르시스로 다가왔던 거다.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표를 모으고 지지를 확산했다. 그들에겐 기존 정당의 전유물이던 유세차량도 정치자금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그들의 손엔 이미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란 더 강력한 신무기가 들려져 있었다.

이에 놀란 정치권에서 안철수와 박원순의 개인적인 흠결을 들춰내고 물고늘어졌다. 실제로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는 선거 중반 재미를 좀 봤다. 박원순 후보의 병역, 학력 의혹등을 연거푸 제기하며 상승세에 제동을 걸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큰 소득은 없었다. 민심은 그보다는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게 기존 정치와 권력을 혼내줄 수 있는 아바타를 더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당선이 확정된 직후 박원순이 “시민이 권력을 이겼다”고 말한 것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이제 관심은 다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대학원장에게로 모아질 차례다. 그는 이번 선거 승리의 기획자이자, 숨은 주역이다. 50%를 넘나드는 인기를 지니고도 5% 지지율을 보이던 박원순에게 시민후보를 양보했던 그다. 당시만해도 서울의 정치권에선 “아무리 박원순 변호사라도 범야권 단일 후보가 되기는 힘들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박 후보는 이후 지지율이 급상승하며 단번에 유력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안원장은 선거 막판 박 후보가 거센 추격을 받게되자 구원투수로도 등장해 깔끔한 마무리 솜씨까지 보였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을 촉발시켰던 로자 파크스를 인용한 응원편지는 막판 투표율 제고에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는 분석이다.

지지자들은 여세를 모아 내년 대선에서 청와대까지 단숨에 진격할 것 같은 기세다. 안 원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적어도 내년 범야권 통합 대선 후보 선출에 시민 후보로 나설 의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장 선거과정에서 범야권 통합 후보 선출된 뒤 본선에 나서 최종 승리한 ‘박원순 코스’를 그대로  대입하면 된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정치권은 떨고 있다. 변화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정당이 후보를 공천하면 유권자는 싫든 좋든 그 중에서 골라서 선택하던 한국 정치의 기본 문법도 무너졌다. 기존의 정당과 유력 대선주자들은 저마다 달라진 환경에 맞춰 새로운 생존법을 찾아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10.26 서울시장 재선거 결과는 이렇게 내년 총선과 대선의 밑그림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더구나 이번에 드러난 분노의 표심은 앞으로도 정치권을 집요하게 괴롭히며 자기반성과 소통을 요구할 것이다. 누구든 새로운 시대 정신과 변화를 따르지 못하면 내년 한국의 대선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은 이제 분명해졌다. 기왕이면 이번 선거가 한국의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큰 간극을 한뼘씩 줄여가는 의미있는 전환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근철<한미정치포럼 대표, 전 경향신문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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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1)
  김성엽 선배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김종윤 2011-11-03 06:03:33
박원순 시장이 일일 환경미화원으로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는 신선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는 김성엽 선배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추천0 반대0
(220.XXX.XXX.147)
  민란을 보는 시각과 해석의 차이4 김성엽 2011-11-01 06:29:19
생각해 볼 값어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추천0 반대0
(115.XXX.XXX.23)
  민란을 보는 시각과 해석의 차이3 김성엽 2011-11-01 06:27:34
보호가 반드시 옳지만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부의 분배와 새로운 질서의 확립을 지나치게 추구 하는 것 역시 그 자체의 오류와 시행착오를 갖을 수 있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정당정치가 확립되고 유지되는 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국가의 중요 직책을 행정능력이나 정치력에 대해서 거의 검증된 것이 없는 사람들이 수행한다는 것이 꼭 바람직한 현상인지
추천0 반대0
(115.XXX.XXX.23)
  민란을 보는 시각과 해석의 차이 2 김성엽 2011-11-01 06:19:10
부정적인 것인지는 때로는 그 당시에 판단하는 것과는 판이한 결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기존의 제도권정치에 대한 시민의 심판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당장은 매우 매력적인 해석처럼 보이기는 하나 어쩌면 그것의 본질은 그 동안 오랫동안 정치권에서 잘 잘못을 떠나 어느정도 검증이 된 후보가 아닌 막연한 낭만적인 인상에 의해 국가의 중요한 직책을 맡기는 우를 범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절대적인 안정추구와 기득권의
추천0 반대0
(115.XXX.XXX.23)
  민란을 보는 시각과 해석의 차이 1 김성엽 2011-11-01 06:15:42
민란의 정의에 대한 시각차가 있다면 민란의 성공여부 문제보다는 그것이 옳바른 행동이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도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때로는 민란의 옳고 그름 만큼이나 중요하게 그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관용도도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사회가 발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새로운 현상이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것인지
추천0 반대0
(115.XXX.XXX.23)
  대단한 사건이지요 박진임 2011-10-29 17:39:07
바라면서도 이렇게 쉽게 이루어질 줄은 몰랐던...
추천0 반대0
(216.XXX.XXX.191)
  문제는 아직도 젊은 세대들에게 백이정현 2011-10-28 12:11:20
경제적으로 돈만 뿌리면 저희들을 지지해 줄 줄아는것이
문제입니다
추천1 반대1
(71.XXX.XXX.56)
  민란, 언어도착이지만 이충섭 2011-10-28 10:45:54
'민'이 주인이고 대통령 포함 모든 정치인, 관료가 머슴들이니까요.
지금까지는 역사가 물구나무 서는 바람에 머슴들의 쿠데타가 정상이
되고 주인들의 주권행사가 반역으로 취급당해 왔네요.
이번 기회에 제 자리들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직접 민주주의로 갈 수 있지 않을까요?
CEO도 정치인될 수 있는 마당에.. 그것도 짜가 씨이오.
추천0 반대1
(99.XXX.XXX.225)
  600백년만에 성공한 민란 정연진 2011-10-27 19:46:48
어떤 이는 조선시대부터 통털어 600년만에 성공한 민란이라고 했는데
고려의 만적의 난부터면... 계산이 잘 안되네요.
소셜미디어를 통한 선거혁명. 쟈스민 혁명에 비교될 수 있을까요?
추천0 반대0
(71.XXX.XXX.47)
  만적은 실패했지만 박원순 씨는 성공했다는 데에 큰 차이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변변 2011-10-27 11:12:39
만적의 난은 실패할 공산이 컸습니다. 인터넷도 없고 핸드폰도 없던 시절에 사회의 최하층인 천민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정보와 통신 없이는 혁명은 불가능했던 시대를 살았던, 참 억울한 사람들입니다. 그에 비해 지금은 사이버상으로도 혁명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철수와 순이] 는 앞으로 무한정 나오겠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리는 현명함이 없으면 혼란만 더 가중될 우려도 있습니다.
추천0 반대0
(71.XXX.XXX.110)
  철수와 순이의 민란...캬 이원영 2011-10-27 07:16:17
이런 컨셉을 뽑아낸 최초의 칼럼 아닌가요. 앞으로 펼쳐질 한국정치 지형이 기대를 갖게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추천1 반대0
(71.XXX.XXX.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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