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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만나 불꽃이 튀는 곳이 교회
[삶과 영성] 왜 교회에 나가는가? 목이 마르기 때문
2011년 09월 21일 (수) 15:05:12 곽건용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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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인가 전문점인가?

물건 파는 가게는 크게 보면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온갖 종류의 물건을 다 갖다놓고 누구든 편리하게 사고 싶은 물건을 골라서 살 수 있게 한 백화점과 몇 가지 종류 물건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전문점이 그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백화점을 선호하고 또 어떤 사람은 전문점을 선호합니다. 만일 제가 이 설교를 10년쯤 전에 했더라면 교회를 가게에 비유하면 어느 편이 바람직할까 라고 물었을 것입니다. 온갖 종류의 물건을 다 갖다놓아서 고객이 사고 싶은 것을 편리하게 살 수 있는 백화점 유형의 교회가 바람직할까, 아니면 몇 종류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전문점 유형이 바람직할까를 물었으리라는 얘기입니다.

저는 교회는 백화점보다는 전문점 유형이어야 한다고 대답했겠지요. 그 까닭은 이렇습니다. 10년쯤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교회들은 백화점 같이 되려고 했습니다. 교인들의 온갖 다양한 욕구를 다 만족시켜줄 수 있도록 온갖 은총과 축복들을 찾기 쉽게 전시해 놓고 교인들로 하여금 원하는 것을 골라 가질 수 있게 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지난 10년 간 교회의 추세가 변했습니다. 교회는 앞 다투어 전문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또는 몇 가지의 ‘특화된 은총’과 ‘독특한 축복’을 갖추려 노력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교회에 가면 제자교육을 잘하고 또 어떤 교회에 가면 새벽기도를 잘하고 또 어떤 교회에 가면 해외선교를 잘하고 하는 등등으로 자기들만의 ‘장기’를 갈고 닦았습니다.

그래서 만일 지금이 10년쯤 전이었더라면 교회는 백화점이 되지 말고 전문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겠지만 지금 2011년에는 그렇게 묻지도 않고 그렇게 대답하지도 않겠습니다. 교회는 백화점이 되어서도 안 되고 전문점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백화점이든 전문점이든 교회가 그런 것이 된다면 결국 교회는 사람들 ‘욕구’를 채워주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지요. 욕구는 새로운 욕구를 낳고 욕망은 더 큰 욕망을 낳는다는 사실을 아는 마당에 그래도 교회가 뭔가가 되어야 한다면 차라리 아무 것도 없는 ‘빈집’이 되는 편이 낫다는 생각입니다. 제 생각이 변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이 변할 수 있냐고요? 그것도 ‘교회가 무엇이냐?’라는 중차대한 물음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변하냐고요? 예, 맞습니다. 변했습니다. 변할 수 있고 또 변해야 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달라짐에 따라서 교회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공동체라는 궁극적인 존재 이유와 목적은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목적을 이루는 방법은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과 발맞추다 보면 세상에 점점 동화되어서 교회와 세상 사이에 있어야 할 거리와 긴장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세상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가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지도 말고 세상과 동화되지도 말고 적당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조심하고 경계하고 때론 혹독하게 비판해야 하는 세상적인 가치들이 교회 안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심지어는 마치 그것이 예수의 복음인 양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빈집이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얘기입니다.
   
푸른 초장.

사람들은 목이 말라서 교회에 온다

사람들은 왜 교회에 올까요? 이는 저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물어온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왜, 무엇 때문에 교회에 옵니까? 오늘 아침에는 날씨도 선선해져서 들로 산으로 나가기 좋은 날인데 왜 불편한 옷을 차려입고 여기 오셨습니까? 조금만 애를 쓰면 다른 데서도 얻을 수 있는 ‘생활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나 서점에 가면 찾아보기 쉽게 전시되어 있는 ‘보람 있게 사는 방법’을 배우려고 교회에 온 것은 아니지 않았습니까?

3-40년 전에 유행했던 ‘복 받는 비결’ 때문에 온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업에 도움이 되어서도 아니고 친구 사귀려고도 아니지 않습니까? 뭔가 심하게,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겠습니까? 뭔가를 ‘갈망’하기 때문이고 반드시 대답을 찾아야 할 중요한 ‘질문’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달리 말하면 ‘목마르기 때문’이 아니냐는 얘기입니다. 무엇인지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무엇인가에 심각한 갈증을 느끼기 때문이 아닙니까?

요한복음 19장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목마르다.”고 말씀했습니다.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작은 음성이었겠지요. 물론 이 말씀은 물과 피를 다 쏟은 다음이기 때문에 실제로 목이 말라 하신 말씀일 수도 있지만 제게는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예수는 당신이 하셔야 했던 일을 다 이루신 순간에도 여전히 목이 마르셨습니다. 다 이룬 다음에 왜 목이 말랐을까요?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겠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는 말이 있습니다. 목마른 사람 대신 다른 사람이 우물 파주는 게 아니란 얘기죠. 목마른 사람이 직접 삽을 들고 우물을 파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도 목마른 사람 대신 우물을 파주시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갈증을 느껴 우물을 파야 하는 사람을 더욱 갈증 나게 하시는 분이라고 믿습니다. 그로 하여금 삽을 들도록 우물을 파게 만드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신앙의 조상들은 하나같이 목마른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고 모세도 그랬습니다. 이들은 모두 목이 말라 스스로 삽을 들고 우물을 팠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갈증을 해소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갈증을 극도로 몰고 가 기어코 스스로 삽을 들게 만드셨습니다. 이들 중에 오늘은 모세 얘기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42편을 읽었는데 그 까닭은 이 시편이 제게는 모세의 생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편 42편이 노래하는 대로 ‘시냇물을 찾는 암사슴’ 같았습니다. “하나님, 생명을 주시는 나의 하나님, 당신이 그리워 목이 탑니다. 언제나 임 계신 데 이르러 당신의 얼굴을 뵈오리이까?” 그는 이집트인에게 쫓겼고 동족에게도 조롱당했습니다. “‘네 하나님이 어찌 되었느냐?’ 비웃는 소리를 날마다 들으며 밤낮으로 흘리는 눈물, 이것이 나의 양식입니다.”라는 구절은 이런 모세의 심정을 대변한다 하겠습니다.

시편 42편으로 읽은 모세의 생애

모세는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히브리인이었고 태어나자마자 죽게 되어 있었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파라오의 궁전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인지 그는 자기가 히브리 노예 출신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에게 정체성의 위기가 닥친 겁니다. 그런 혼란을 겪던 중 그는 한 이집트인이 동족 히브리인을 때리는 것을 보고 그 이집트인을 죽이고 모래 속에 묻어버렸습니다. 이튿날 이번에는 히브리인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말리다가 그들에게 “누가 너를 우리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이번에는 우리를 때려죽이려느냐?”는 말을 듣고 두려워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서 우물가에서 훗날 아내가 될 여자를 만났고 자식을 낳고 그런대로 잘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대답을 찾아야 할 질문이 있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런 일을 겪고 있는가, 여기에는 무슨 뜻이 있을까 하는 물음이 그것이었습니다. 모세의 영혼은 결코 잠잠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영혼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말씀하시는 야훼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광야에 나왔습니다. 홍해를 갈라 동족을 살리고 이집트 군인들을 몰살했을 때 심정은 “축제의 모임, 환희와 찬미 소리 드높던 그 행렬, 무리들 앞장서서 성전으로 들어가던 일,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미어집니다.”라는 시편 노래와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과 1주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그는 무려 40년 동안 백성들을 이끌고 유랑해야 했습니다. 그 자신도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불안했겠지요. “어찌하여 내가 이토록 낙심하는가? 어찌하여 이토록 불안해하는가? 하느님을 기다리리라. 나를 구해 주신 분, 나의 하나님, 나는 그를 찬양하리라.” 그는 이렇게 노래하며 스스로 다짐했겠지요.

하지만 결국 40년 만에 광야 유랑도 끝나고 요단강 너머로 약속의 땅이 바라다 보이는 곳까지 왔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 것이지요. 요단강이라고 해봐야 넓지도 크지도 않습니다. 조금 큰 개울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모세는 결국에는 요단강을 건너지 못했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끝내 갈증을 안고 숨을 거뒀습니다.

그의 갈증은 여호수아를 비롯한 2대 지도자들이 물려받았습니다. 저는 “목마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비슷한 의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하실 일은 다 이루셨지만 그분께서 하신 일을 완성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에, 그리고 완성은 당신을 따를 사람들이 이뤄야 하는 것이기에 여전히 예수께서는 목이 마르셨던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오는 곳이 아닙니다. 그것이 지식이 됐든 지혜가 됐든 복이 됐든 은총이 됐든 그 무엇을 얻으려고 오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과의 불같은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불꽃이 튀는 곳이지요. 하나님과 여러분이 만나 불꽃이 튀는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 불꽃 튀는 만남을 위해 교회에 옵니다. 물론 이런 하나님과의 불꽃 튀는 만남이 교회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세상에서도, 우리네 일상의 삶 속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네 삶의 현장이 곧 교회라고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교회는 복잡한 삶의 현장에서 한 걸을 물러나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곳이고 온 영혼으로 하나님을 갈망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말씀 중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 그들이 만족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곧 만족할 것이란 말씀을 하시며 예수께서 어떤 느낌으로 말씀하셨는지 알기 때문에 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뒤집어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더 주리고 더 목마를 것이다.”

제가 한 얘기를 다 듣고 나서 “어휴, 맞는 얘기이긴 하지만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별 해당사항 없는 얘기지 뭐. 나로서는 너무 힘든 얘기야......”라고 혼잣말하는 분들을 위해 시몬느 베이유가 한 말을 소개하겠습니다.

만일 그가 진정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라면, 다시 말해서 진실을 사랑하고 싶어 하고, 더욱 더 하나님의 사랑에 사랑으로 보답하고 싶어 하고, 비록 갈 길이 까마득하지만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내디뎌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고 싶고, 이웃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하고 싶고, 자기중심적 생활을 버리고 싶고, 설령 잘 되지 않더라도 의에 목마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비록 그가 실존의 겉면에 근본적인 결단과 십분 일치하지 않는 많은 결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하나님을 고대하는 사람, 하나님에 목마른 사람이다. ♣

곽건용<사회 78, 향린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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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26)
  예수의 말씀이 쉬었다면 양민 2011-10-04 08:40:13
종교로 발전할 수 없었을 겁니다.
예수의 말씀이 어려웠다면
또한 종교로 발전할 수 없었을 겁니다.
진리는 쉬우면서도 어렵습니다.
말씀의 해석과 이해에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의인이라고도 죄인이라고도 부를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이가 의인이며 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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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XXX.XXX.22)
  본인에 의해 삭제 되었습니다. 익명 2011-10-04 1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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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XXX.XXX.147)
  음... 심오한... 이충섭 2011-10-04 09:02:31
종교, 참 쉽지 않습니다.
예수, 알아갈수록 더 심오해지는 분입니다.
진리, 한 마디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그 무엇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생각을 빌릴 수도 없고...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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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225)
  오타 양민 2011-10-04 09:47:42
쉬었다면 ----- 쉬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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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XXX.XXX.145)
  본인에 의해 삭제 되었습니다. 익명 2011-10-03 13: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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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XXX.XXX.147)
  본인에 의해 삭제 되었습니다. 익명 2011-10-03 12: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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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XXX.XXX.147)
  본인에 의해 삭제 되었습니다. 익명 2011-10-03 12: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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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XXX.XXX.147)
  본인에 의해 삭제 되었습니다. 익명 2011-10-02 11:4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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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XXX.XXX.147)
  그 죄인 님이 곽건용 2011-10-03 09:34:33
성경을 어떻게 읽고 얼마나 알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알아야 말을 하거나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냥 '성경'이라고만 하면 사실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성경은 66권으로 이루어진 문서 collection입니다. 창세기와 로마서가 같은 얘기를 하고 있지는 않지요. 그리고 하느님과 사람이 이룰 관계를 '구원'이란 한 마디 말에 다 담을 수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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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86)
  본인에 의해 삭제 되었습니다. 익명 2011-10-02 11:35:14
본인에 의해 삭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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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XXX.XXX.147)
  질문은 아닌 것 같은데 곽건용 2011-10-03 09:20:30
신본주의, 인본주의, 제목설교, 본문설교.... 설교는 이런 것들 중 하나여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어떤 설교를 신본주의 설교인지 인본주의 설교인지 따져봐야 한다고도, 따져볼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귀하가 궁금해하는 점을 저도 귀하만큼 궁금해합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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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86)
  기독교인이라면 적어도 박혜옥 2011-09-24 19:38:07
어떻게 살아야 하는것을 가르치는것이 아니라(목사님 말씀대로
의에주리고 진실을 사랑하는삶)
대다수의 교회들이 팔고있는 Insurance benefits(Blessings, 영생,천국)등등 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아무리 기독교인이 많아져도 사회가 달라지는것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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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56)
  듣기 싫은 얘기는 안 듣는 시대 곽건용 2011-09-25 09:21:17
그런 시대이니 목사인들 듣기 싫어하는 얘기를 뭐가 신난다고 해대겠습니까. 그런 목사가 있다면 '성공' 아예 포기한 목사죠. 나도 '이런 얘기 하면 교인들이 좋아하지 않을 텐데...' 하는 걱정을 늘 합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없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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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97)
  목마른 사람은 못가고 이미 배가 터지도록 퍼마신척 하는 사람들이 최응환 2011-09-23 03:37:20
더 설치는 곳이 요즘 교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난 이미 많이 묵&#51024;다라고 생각하면서 만족해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고민하는 사람보다 무조건 확신하는 사람, 조용히 물어보는 사람보다 큰 소리로 대답을 외치는 사람, 자기 잘못을 돌아보는 사람보다 남의 죄를 꾸짖는 사람들이 득실득실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향린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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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XXX.XXX.254)
  밖에서 보는 것과는 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곽건용 2011-09-25 09:19:25
관찰자의 시선이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거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죠. 그 안에서 갈등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의 진면목이 눈에 안 들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응환 님이 본 것에 나도 동의하지만 말입니다. 글구 향린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쬐끔 조심할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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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97)
  진실을 갈파하면 불편해지겠지만 감히 언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auramon 2011-09-21 12:31:07
무슨 뜻입니까 ? 종교.교회.당구장.술집.학교.병원.. 이런 것들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인간들이 이런 것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수요.공급의 간단한 법칙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면 백화점 교회이건 디스코장 교회이건 그 보다 더한 것이건 흥행하게 되겠지요. 불꽃 튀기는 교회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한 그런 교회도 있겠지요. 자유경제 하에서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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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XXX.XXX.219)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 auramon 2011-09-21 12:49:39
이 말씀은 "목마른 자가 결국 우물을 파게 된다 - 따라서 우물이 생길 것이니, 좋다." 이런 뜻이 아닐른지요.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제게는 더 이해가 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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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XXX.XXX.219)
  맞습니다. 결국 목마른 자가 우물 팝니다 곽건용 2011-09-25 09:16:51
그래서 세상 교회들이 어떻다는 얘기보다는 내가 어떤 우물을 파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같은 우물을 파고 싶어하는 사람이 더 많아져서 그 우물을 좀더 쉽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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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97)
  교회의 존재양식 이충섭 2011-09-21 11:13:39
백화점도 전문점도 아닌 교회,
고객에게 서비스 파는 가게가 아니라,
부시와 부싯돌이 맞부딪치는 그 순간 그 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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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225)
  그 불꽃이 반드시 교회에서만 타오르지는 않겠지만 곽건용 2011-09-25 09:15:01
비슷한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도하고 명상하고 진실한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헤셀은 안식일/주일을 '시간의 성전'(sanctuary in time)이라고 불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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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97)
  부시와 부싯돌이 맞부딪치는 순간 불꽃이 ㅋㅋㅋ 워낭 2011-09-21 16:07:45
정말 미치도록 재밌는 표현이 아닐 수 없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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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109)
  시차 쫌.. 이충섭 2011-09-21 16:14:24
워낭님, 이제사 시차 쫌 좁히셨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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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225)
  실존의 겉면과 근본적인 결단 이상희 2011-09-21 09:33:50
마지막 베이유의 말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눈살 찌푸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쉽게 손가락질하면 안되겠구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정반대인 결단을 내리고 노력하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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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XXX.XXX.131)
  하지만 종교가 판단과 정죄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요 곽건용 2011-09-25 09:12:48
종교는 마음을 봐야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을 바꾸고자 하는 양심이 어떤 식으로 요동치고 있는지를 보고 그것을 끌어내는 것이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끼면 그는 언젠가 그렇게 된다고 믿는 게 종교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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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97)
  의에 목마르고 진리에 목마른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원영 2011-09-20 22:15:37
어찌 살아갈수록 멩~하게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하품만 나옵니다. 어떡하면 좋지요? 골수를 자극하는 순백의 메시지가 담긴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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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47)
  많은 경우에 종교가 탐욕을 채우는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곽건용 2011-09-25 09:09:35
정상적인 수단으로 채울 수 없는 탐욕을 신의 힘을 빌어 채우려는 또 다른 탐욕... 구원의 길은 그 탐욕을 버리는데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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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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