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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춤추고 있는 흑조
[삶과 영성] 영화 '블랙스완'이 던지는 질문
2011년 06월 09일 (목) 14:42:13 곽건용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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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설교 제목이 <블랙 스완>입니다. 이 제목은 나탈리 포트만에게 아카데미 주연상 트로피를 안겨준 대런 아로노프스키(Darren Aronofski) 감독의 영화 <블랙 스완>에서 왔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차이콥스키의 무용극 <백조의 호수>입니다. 이 무용극의 스토리를 모르는 분도 있을 터이니 먼저 <백조의 호수> 스토리부터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영화 블랙스완의 포스터.


지크프리트 왕자는 자기 생일잔치 자리에서 곧 아내를 정해서 결혼하겠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지는 결혼을 할 수 없음을 알게 되고는 자리를 뛰쳐나가 밤중에 어느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아름다운 백조들이 호수 위를 날아다니는 광경을 보지요. 그는 백조에게 활을 겨누다가 깜짝 놀라 활을 내려놓습니다. 하얀 깃털을 옷처럼 입고 있는, 백조라기보다는 아름다운 여인 같은 존재를 봤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춤을 춥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마술사 로트바르트의 마법에 걸려 백조가 된 오테트 공주였습니다. 그녀는 낮에는 백조가 되고 밤이 되면 사람으로 돌아오는 마법에 걸려 있었습니다.

왕자는 오테트 공주와 사랑에 빠집니다. 공주의 마법은 누군가가 사랑을 고백하면 풀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이 사실은 마법사만 알고 있지요. 막 왕자가 사랑을 고백하려는 순간 마법사가 나타났고 왕자가 그를 죽이려 하자 공주는 왕자를 말립니다. 만일 그가 죽으면 마법을 영원히 풀 수 없이 때문입니다.

왕자는 궁으로 돌아왔고 마법사는 자기 딸 오딜과 함께 궁에 나타납니다. 마법사는 오딜을 오테트와 똑같이 보이게 만들어놨습니다. 다만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오테트의 흰 옷이 아니라 검은 옷이었습니다. 영화 제목 <블랙 스완>은 여기서 왔습니다. 왕자는 그녀가 오테트인 줄 알고 그녀와 춤을 췄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얼마 후 오테트가 궁전에 도착했고 왕자는 자기가 속은 걸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왕자는 다시 호수로 가서 공주를 만나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빕니다. 이때 마술사가 나타나 둘을 떼어놓으려 합니다. 여기서 무용극은 두 가지 서로 다른 결말을 전합니다. 하나는 왕자가 사랑을 고백해서 공주의 마법을 풀었고 이후로 공주와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얘기이고, 다른 하나는 공주의 마법을 풀 수 없음을 알고 왕자와 공주가 호수에 뛰어들어 죽음을 택한다는 얘기입니다.

<블랙 스완>
<백조의 호수>에 백조뿐 아니라 흑조도 등장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셨습니까? 영화 <블랙 스완>을 만든 아로노프스키 감독도 이 무용극을 처음 봤을 때까지는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그러고도 영화를 만들어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까지 됐으니 그걸 몰랐다고 해서 창피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영화 <블랙 스완>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뉴욕의 한 발레단의 발레리나 니나는 소극적이고 연약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남자 친구도 없고 그녀가 할 줄 아는 것은 오로지 발레뿐이고 그 외에 다른 생활이 없습니다. 엄마는 그녀를 인형 다루듯 하지요. 그즈음 선배 프리마돈나 베스가 은퇴하자 그녀는 <백조의 호수>의 주역을 뽑는 오디션에 도전합니다. 발레단의 예술 감독 토마스는 교과서적으로 아름답게 춤을 추는 그녀가 ‘백조’로서는 흠잡을 데 없지만 관능적이고 고혹적인 매력을 보여줘야 하는 ‘흑조’를 연기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토마스는 결국 그녀를 선택합니다. 그녀와 엄마는 뛸 듯이 기뻐하고 그녀는 온 정성을 다해 연습에 몰두합니다.

하지만 공연이 다가올수록 그녀는 말할 수 없는 중압감에 짓눌립니다. 급기야 그녀의 정신은 분열되고 몸에 이상한 변화까지 생깁니다. 등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상처가 생기지 않나 손가락이 갈라져 피가 나지 않나, 원인을 알 수 없는 몸의 변화가 생깁니다. 이때 신입단원 릴리가 새로 들어오는데 그녀는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고 춤도 그리 정교하지 않지만 묘하게 마성적인 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흑조의 매력이 그녀에게 있습니다. 니나는 이 사실을 알고 한편으로는 그녀를 경계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느낍니다. 둘은 그래서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니나는 공연 날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심한 강박감에 시달리게 되고 급기야 심각한 환각과 환청에 시달립니다. 자기에게는 없는 흑조의 매력을 갖고 있는 릴리, 자기의 미래가 될지도 모르는 몰락한 선배 발레리나 베스, 그리고 자기가 못 이룬 야심을 딸에게 투사하여 거기에 모든 것을 거는 엄마, 니나에게는 이런 것들이 극도의 스트레스의 원인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것들을 밀어낼 수만은 없습니다.

결국 그것들이 자기 자신의 일부임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밀어내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끌어안으면서 어쩔 줄 몰라 몸부림칩니다. 나탈리 포트만이 이 분열된 자아를 기가 막히게 연기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올해 많은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휩쓸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그녀는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저지릅니다. 귀청이 터질듯 시끄러운 클럽에 가서 처음 보는 남자와 어울리기도 하고 릴리와 동성애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그녀가 이렇게 변하자 엄마와의 관계도 틀어지는데 그럴수록 엄마는 더 가혹하고 무섭고 소름끼치는 존재로 변해갑니다. 그녀가 자신과 갈등하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현상은 그녀의 몸에 일어나는 변형입니다. 그녀는 결국 공연 전날 엄마와 크게 다투고 기절해버립니다. 엄마는 발레단에 연락해서 니나가 공연할 수 없음을 알리지만 니나는 공연을 포기할 수 없다면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추스르고 공연장으로 갑니다.

첫째 막의 시작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곧 환각에 빠졌고 당황한 공연자는 그녀를 놓쳐 바닥에 떨어뜨립니다. 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막간에 그녀가 자기 분장실에 와 보니 릴리가 흑조 분장을 하고 거기 있는 게 아닙니까. 니나는 그녀와 싸움을 벌였고 급기야 그녀를 깨진 거울조각으로 찌릅니다. 그리고 흥건히 피를 흘리는 릴리를 화장실에 숨겨두고 그녀는 다시 무대에 섭니다. 이번에는 흑조를 연기할 차례인데 그녀는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흑조를 완벽하게 연기합니다. 깃털은 검은 색으로 변하고 그녀의 팔은 검은색 날개로 변하고 그녀는 무아지경에 빠져 춤을 춥니다. 그녀가 마지막 장면을 연기하자 관객들은 모두 일어서서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토마스를 비롯한 동료들도 물론 환호합니다.

이제 마지막 4막의 백조를 연기할 차례입니다. 니나가 분장실에서 준비하고 있는데 릴리가 문을 열고 들어와 그녀의 연기를 칭찬하는 게 아닙니까! 깜짝 놀란 그녀가 릴리의 시신을 숨겨뒀던 화장실에 가보니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흥건히 바닥을 적셨던 피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비로소 자기가 환각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거울을 보니 그것은 여전히 깨진 채로 있었습니다. 그녀는 혼란스러웠지만 무대에 올라야 했습니다. 그녀는 마지막 막의 백조를 완벽하게 연기합니다.

마지막에 호수에 몸을 던지는 연기를 마치자 관객들의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동료들이 그녀에게 다가와 축하하는데 릴리는 니나의 옆구리가 피로 흥건히 젖어 있음을 봅니다. 모두 놀라서 그녀에게 달려오고 토마스가 그녀를 감싸 안았을 때 그녀는 토마스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I felt it prefect... perfect... it was perfect!”

내 안에서 춤추는 흑조

<블랙 스완>은 발레영화이면서도 발레영화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멋진 발레리노와 발레리나들이 나와서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우아하게 춤추는 장면을 기대하고 영화를 본다면 크게 실망할 영화입니다. 영화는 아름답고 완벽한 결과물이 아니라 아름답고 완벽해지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고통과 완벽해지려는 강박 때문에 파괴되어가는 정신과 육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고통과 강박은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없다면 예술적인 아름다움은 결코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몸의 아름다움에 대한 최고의 표현인 발레라는 예술이 그 몸을 가장 가혹하고 잔혹하게 다루고 몰아세워야 하는 예술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토마스는 니나에게 백조를 표현할 교과서적인 아름다움은 있지만 흑조를 표현할 관능적이고 어둡고 고혹적이며 파괴적인 매력이 없기 때문에 <백조의 호수>의 주역에 맞지 않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이 흑조의 성격이 밖에서 주입될 수 있는 게 아니란 사실에 있습니다. <블랙 스완>은 니나가 자기 안에 잠재해 있는 이 어둡고 관능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을 찾아가는 영화라고 하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제가 영화에서 본 것은, 타자가 내게 거는 기대 및 원하는 것과 나 자신의 정체성이 어떻게 관련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니나는 백조의 호수의 주역을 맡게 되기 전까지 엄마의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바비 인형’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루지 못한 엄마의 꿈을 대신 이뤄줄 ‘대리만족’의 존재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백조의 호수> 주역으로 낙점된 후에는 엄마가 아닌 새로운 타자의 욕망을 실현해야 하는 존재가 됐습니다. 그녀의 어딘가에 깊이 숨어 있는 어둡고 관능적인 면을 드러내 흑조를 연기할 것을 요구하는 토마스의 욕망을 실현해야 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 욕망은 관객들의 욕망이기도 합니다.

사실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입니다. 누군가의 욕망을 대신 실현해야 하는 존재란 얘기입니다. 이 욕망은 자식을 성공시키고 말겠다는 치맛바람 엄마에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그가 아무리 남과 무관하게 제 멋대로 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는 여전히 남의 기대와 욕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대와 욕망을 안고 그것에 마주서서 어떤 식으로든지 그것을 실현하거나 실현하는데 실패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나님 역시 나에 대한 기대와 욕망을 갖고 있는 타자라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나를 향한 타자의 기대 및 욕망과 나의 나 됨(주체성)이 어떻게 만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저는 이 질문을 영화 <블랙 스완>에서 읽었습니다. 이것은 비껴갈 수 없는 질문이므로 어떻게든 대답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시간 관계상 문제를 제기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대답을 찾는 일은 다음주일에 해볼 텐데 오늘은 성경이 이 문제를 어떻게 제기하고 있는지를 얘기하고 오늘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첫째로 출애굽기 32장이 전하는 이른바 ‘황금송아지’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게서 계명을 받으러 산에 올라간 모세가 오래도록 내려오지 않자 아론에게 몰려와 청했습니다. 아마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어서 우리를 앞장설 신을 만들어주시오.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려온 그 어른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아론을 몰아세웠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런 청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야훼 하나님이 그들에게 해준 일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이들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의 족쇄에서 풀어 해방시켜 준 신입니다.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려 그토록 완고한 바로를 굴복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킨 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 일들을 소문으로만 들은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두 눈으로 똑바로 목격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야훼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 추적해오는 이집트 군대로부터 그들을 구원해준 신이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을 ‘직접’ 경험했던 그들이 어떻게 “어서 우리를 앞장설 신을 만들어주시오.”라고 청할 수 있는가 말입니다.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론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모세와 가장 가까이서 그 모든 일들을 자기 두 눈으로 분명히 목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아무리 백성들이 청원한다고 해서 어떻게 “너희 아내와 아들딸의 귀에 걸린 금고리를 나에게 가져오라.”고 말할 수 있느냐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녹여서 금송아지를 만들 수 있는가 말입니다. 그렇게 해놓고 아론은 “내일 야훼 앞에서 축제를 올리자.”고 선포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어떻게 ‘야훼’ 앞에서 축제를 올립니까? 아론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백성들은 이튿날 일찍 일어나 금송아지에게 번제를 드리고 친교제물을 바친 다음에 하루 종일 먹고 마시고 광란했다고 했습니다. 이토록 어둡고 관능적이고 파괴적인 면이 이스라엘 백성들 그 어디에 숨어 있었단 말입니까?

그 다음으로 로마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이 한 말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입니다. 내 속에 곧 내 육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려고 하면서도 나에게는 그것을 실천할 힘이 없습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결국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들어 있는 죄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곧 내가 선을 행하려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마음속으로는 하느님의 율법을 반기지만 내 몸 속에는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여 싸우고 있는 다른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법은 나를 사로잡아 내 몸 속에 있는 죄의 법의 종이 되게 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

이 말을 하는 사람이 바울입니다. 그는 스스로 율법의 의로 따지면 자기는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는 백조를 연기하기에 적합하면 했지 흑조를 연기하기 적합한 사람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가 “나는 과연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줄 것입니까?”라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라고 곤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안에서 춤추고 있는 흑조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화 <블랙 스완>에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 하겠습니다.
♣(이 글은 향린 교회 담임으로 재직하고 있는 곽건용 동문의 주일 설교를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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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8)
  영화를 영화관에 가서 보고 싶은데요... 이권병 2011-06-10 22:32:29
전 영어가 짧아서 DVD 가 나와야 자막 나오게 해서 봐요... 꺼이.
근데, 저도 악마가 되기고 하고 천사가 되기도 해요. 천국에 있다가도 금새 지옥에 앉아 있고..
그래도 잔차타면 천국에 있는 기분이 들어요...^^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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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33)
  계속 잔차 타고 있으면 곽건용 2011-06-11 10:34:19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습니다. 노상 천국에 있을 수 있으니... 하지만 노상 천국은 천국이 아니죠. 사람이 멈추지 않고 계속 웃으면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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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53)
  역시! 이상희 2011-06-10 15:27:41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이 보인다더니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을 쓰셨군요. 저는 이 영화는 프리마돈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것 같아서 개운치 않았는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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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XXX.XXX.54)
  별 고뇌도 없는 사람이 곽건용 2011-06-11 10:37:50
영화에서 부처님을 봤습니다. 고뇌하는 부처님.... 왜 사람/부처님은 완벽해야/완벽하려 해서 할까요? 훌륭한 예술공연을 보면서도 '저렇게 하려고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맘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옛날에는 뭐든지 완벽해야(최소한 최선을 다해 완벽하려 해야) 한다고 믿고 자신을 학대한 경험이 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래봐야...'지만 그땐 심각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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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53)
  왜? 이상대 2011-06-09 19:50:13
영화관까지 갔다가 돌아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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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XXX.XXX.26)
  난 영화관 가서 곽건용 2011-06-10 09:48:06
뭐 볼까 하다가 이거 안 보고 '킹스 스피취' 봤습니다. 그리고 그땐 내 선택이 탁월했다고 생각했죠. 나중에 이 영화를 DVD로 본 담에는 그때 내 선택이 옳았나???? 하는 의문이 생겼더랬습니다. 물론 '킹스...'도 좋은 영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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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112)
  이상대 2011-06-09 19:50:12
보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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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XXX.XXX.26)
  꼭.... 이라고까진 할 거 없지만 곽건용 2011-06-10 09:46:00
근래에 본 영화 중에서 좋은 영화로 손가락으로 꼽을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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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112)
  백조와 흑조 이충섭 2011-06-09 16:34:03
백조의 호수에 흑조도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이 무식함을 탓해 봅니다.
니나가 처음부터 순백색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얼룩조 또는 팔색조처럼
자연스러운 깃털을 지녔더라면 깊은 곳에 꽁꽁 숨겨진 흑조를 드러내느라
순백의 깃털을 피로 물들이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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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225)
  척하면 삼천리? 곽건용 2011-06-09 17:39:29
흑조도 등장한다는 사실은 영화 감독도 몰랐다니까 뭐 무식을 탓할 거까진 없겠죠. 근데 충섭 동문은 척 하면 삼천리네요. 2부 내용을 감 잡은 거 같은 불길한 느낌이 확 드네여. 하긴 우리가 너무 오래 사귀긴 했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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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36)
  영화 다시 봐야 되겠네 김성수 2011-06-09 15:52:28
영화 평론도 이제 1부, 2부로 나눠하나요? 아이고, 답답혀... 2부 언제 나오나요? 지난 번에 봤는데, 다시 한 번 보고싶게 만드는 훌륭한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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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XXX.XXX.108)
  2부는 곽건용 2011-06-09 17:37:09
아래도 썼지만 12일에 나옵니다. 아크로 편집장님이 실어줄지 모르지만... ㅎ (약간의 압력 행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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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36)
  사랑고백 김종윤 2011-06-09 06:53:22
바울과 아론에게 왕자님이 와서 사랑고백을 해서 저주가 풀린 것이라고 해야 하나요?
백조가 흑조로 변하는 걸 보고 불쌍해서 바울에게 사랑 고백을 해서 저주가 풀린 것인가요?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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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XXX.XXX.186)
  두고 봅시다 곽건용 2011-06-09 17:36:08
어떻게 전개될지... 이것만 읽으면 이 글 안에서 대답이 다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아래도 썼지만 아직 후반부가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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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36)
  혼란스러워집니다... 김종윤 2011-06-09 06:44:39
왕자가 예수님인가요?
백조가 아론인가요? 흑조가 아론인가요?
모세가 백조인가요?
백조는 무슨 죄를 지어서 마법에 걸린 건가요?
그래서 흑조가 될 수 밖에 없는 죄를 지었나요?
바울은 백조? 흑조?
아론 이야기하고, 바울이야기하고, 영화이야기는 연관지어서 이야기하기에는
서로서로 좀 다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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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XXX.XXX.186)
  당연히 혼란스러울 겁니다. 곽건용 2011-06-09 08:02:09
왜냐하면 이번 글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6월 5일에 한 설교이고 마무리는 6월 12일에 하게 계획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이 글에서는 문제만 제기했습니다. 나름의 답은 12일에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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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21)
  이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 꼭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원영 2011-06-09 06:14:31
영화가 좀 어려울 것 같은데 그래도 꼭 보아야 하겠네요. 고통과 강박이란 어려움이 없다면 예술은 만들어 질 수 없다는 부분 특히 와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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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74)
  어렵다기보다는 좀.... 곽건용 2011-06-09 17:35:05
감정적으로 힘드는 부분이 있죠. 오래 전에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작가 김운경 씨 인터뷰 기사를 읽었습니다. 드라마 대사 한 줄 쓰기 위해 담배를 몇 갑을 피우는지 모른답니다. 그런 고통 없이 뭔가를 쓰는 제가 무척 창피했습니다. 이 양반 이번에 <짝패>라는 사극을 썼더군요. 오랜만에 이 양반 드라마가 방송됐지요. 조선 말기 민란을 그린 드라만데 난 재미있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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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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