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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가 불편한 이유
급변하는 가족 문화 탄력적으로 그려낼 작품 아쉬워
2011년 06월 03일 (금) 23:08:20 박진임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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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소설이 출판된 이후 한국에서 이미 이백만부 이상이 팔려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데다 영어로 번역되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작품이 미국 독서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일단축하할 일이라고 본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신경숙 신드롬’이라는 과장된 표현까지 써가며 관련된 기사와 전문가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작가 이문열은 자신이 꿈꾸었으나 이루지 못한 미국 시장 진출을 신경숙이 해내었다고 한다.
   

 

김주연 한국문학번역원장은 그동안 한국 문학 번역에 들인 공이 이제야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자축하고 있다. 물론 신경숙 소설에 대한 혹평도 있다. NPR에 보도된, 영문학자 코리건(Corrigan)의 리뷰가 그것이다. 그는 신경숙이 아이러니를 이해하지 못하는 작가이며 그의 작품은 희생적인 어머니를 향해 자녀들이 갖기 쉬운 죄의식을 부추기어 눈물을 유도하는 싸구려 멜로드라마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에 호소하며 본격문학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한참 부족한 ‘김치 냄새 나는’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 혹평은 분노한 일반 독자의 댓글들을 유도하며 오히려 신드롬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필자가 신경숙 소설에 대해 불편해하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이다. 그것은 작가가 드러내는 고착된 어머니상과 가족주의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필자는『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 일본 작가와 중국 작가의 작품을 같이 읽었다. 일본의 미야베 미유키의 사회 추리 소설,『이유』와 중국의 챠오 원 쉬엔의 『청동 해바라기』가 그것이다.

1999년 일본의 나오키상을 수상한 소설, 『이유』는 도쿄의 최고급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해사건을 파헤쳐나가는 이야기이다. 거기에는 과도한 부채로 고급 아파트를 소유하고 그러다가 서서히 붕괴되어 나가는 가족이 등장한다. 그 아들은 “부모보다 타인하고 살아가는 것이 더 편”한 인물이다.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허위 임대 계약서를 꾸미고 들인 가짜 가족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 가족은 서로 아무런 혈연관계를 갖지 않은, 부유하는 인물들이 인위적으로 이룬 것이다. 『이유』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혈연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 개념의 해체와 새로운 형태로 생겨난 가족의 모습이다. 진정으로 서로 이해하고 의지하면 그것으로 가족인 것이다.

 챠오 원 쉬엔의 『청동 해바라기』또한 고아가 되어 청동의 집에 얹혀 살게 된 해바라기라는 이름의 소녀와 청동이라는 소년이 남매가 되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 꼭 같은 피를 나눈 사람들이어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두 작품은 동시에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한국 작가 김지원의 단편,「사랑의 예감」에도 혈연중심의 배타적인 가족주의에 대한 은근한 비판이 들어있다.

 한국 사회에서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해체되고 있고 희생적인 어머니상이 소멸하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사실이다. 유산을 바라고 부모를 살해하는 자녀 이야기나 자식이 있음에도 부모를 찾지 않아 생겨나는 독거 노인의 증가는 이미 잘 알려진 바이다. 공식적 통계에 의지할 때 한국의 이혼율이 40%를 넘어선 것도 오래전의 일이다.

작가 공지영이『즐거운 나의집』에서 보여주듯이 세 명의 각기 다른 아버지를 둔 아이들이 어머니와 가정을 이루고 살기도 한다. 김윤식 평론가가 지적한 바처럼, 이러한 가족 붕괴의 시대에 전통적인 가족의 정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게 볼 일은 아니다. 한국 사회는 매우 급격히 변화해가고 있다. 다민족 다문화사회로 변해가는 한국 사회의 모습에 걸맞게 보다 탄력적이고 유연한 가족의 형태를 재현하는 문학작품을 기대해야 할 때이다. 그런 문학 작품은 우리의 생각 또한 유연하고 열려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박진임<국문 82,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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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0)
  세상이 바뀌긴 했어도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몰라도 공감이 꽤 가던데... 이권병 2011-06-08 13:17:04
다양함 속의 일부분이 다양한 문화에서 받아들여졌다면 그 건 뭔가가 있는 거 같아요. 혹평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봐요. 세상은 정말 다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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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194)
  없애고 싶다고 없어지지도 않고 만들고 싶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겠지요 곽건용 2011-06-07 08:36:23
어느 평론가의 <엄마를 부탁해> 평론을 읽고 실망한 적이 있습니다. 신경숙이란 능력있는 작가가 썼지만 이건 소설이 아니라 개인 넉두리란 식으로 썼더군요. 저는 넉두리를 쓰면 안 돼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진임 님 글 잘 읽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생각도 살아가는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작가는 그런 변화를 그리면 된다고 봅니다.
추천0 반대0
(76.XXX.XXX.66)
  전통적인 가족상 이상희 2011-06-06 20:13:05
전통적인 가족상 역시 탄력적이고 유연한 가족의 다양한 형태 중 하나가 아닐까요?
추천1 반대0
(138.XXX.XXX.243)
  문학의 영역 이충섭 2011-06-06 09:22:19
고착된 어머니상과 가족주의에 대한 집착이 문제라는 데에 동의합니다. 고착된 어머니상과 가족주의 자체에 대해서야 개인적인 문제겠지만, 우리 문학의 대표로까지 격상되기에는 '집착' 부분이 좀 걸립니다. 과거 우리 어머니상을 통째로 부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감동하고 어머니 자신도 행복한 어머니상을 찾는 데에 신경숙신드롬이 과연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마음에 박진임님의 시각이 신선합니다.
추천0 반대0
(99.XXX.XXX.225)
  이충섭님의 댓글에 저도 동의합니다. 김문엽 2011-06-08 15:31:43
우리 문학에도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가족과 민족이란 주제는 사실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않은 분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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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XXX.XXX.112)
  가족주의의 비극 김인종 2011-06-03 21:00:16
생물학적으로 가족주의는 우생혈통 보존의 한방법입니다. 이기주의와 경쟁의 시작이죠(인간의 본성 저자, 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안난다) "우리가 남이가" 지방색, 서울대 동문의 엘리트의식,
이런 것들이 확장된 가족주의, 울타리를 긋는 나누기의 전형입니다. 사랑(진짜 사랑)은 가족의 울타리를 깨면서 시작되지 않을까요. 박진임교수의 잘 꼬집어 낸 관점. "셔!"
추천0 반대0
(74.XXX.XXX.41)
  새로운 관점이지만 오달 2011-06-03 08:52:35
박교수님의 시각에 이의를 달아야겠네요.
신경숙이 그리는 어머니 상이 사라져가고 새로운 가족의 패라다임이 생긴다고 해서,
그런 한국의 어머니 밑에서 자란 사람들의 기억이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 소설이 그런 자식들의 죄의식을 부춘긴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그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자식들에게 주는 심정적 정화 기능도 소중합니다.
지극히 한국적이라는 비판도 칭찬으로 들립니다.
문학의 보편성도 요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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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50)
  또 400자 넘기네... 오달 2011-06-03 08:55:19
... globalization 문제처럼 논란의 대상이 되겠지요.

박교수님 다양한 목소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이런 글 많이 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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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50)
  [한국의 어머니들은 눈물로 진주를 빚는다] 고 할만큼 다정다감하고 혈연에 대해서만은 무한의 사랑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입니다. 변변 2011-06-03 07:15:25
제가 사는 동네에는 한국인 입양아들이 약 2만명 살고 있습니다. 모두 스칸디나비아 출신 부모들과 살고 있는데 아주 행복합니다. [눈물로 진주를 빚는] 모습은 보지못했지만 어머니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희생은 모두 눈물겹습니다. 시대가 바뀌면 새로운 작가가 새로운 가족상을 보여주겠지요. 마치 공지영 작가처럼. 신경숙 씨는 본인이 아는만큼의 어머니의 모습을 작품에 그리지 않았을까요. 아무튼 경하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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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167)
  이런 글 때문에 관점,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원영 2011-06-03 06:19:01
신경숙을 읽으면서 그저 저릿한 마음으로 읽기만 했는데, 박진임님의 글을 읽으니 안목이 훨씬 넓어지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글, 생각을 많이 접하는 것이 시야를 넓히는 길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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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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