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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게으름이나 무지의 표현이어선 안돼
[삶과영성]불확실성 시대, 인간의 기도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2011년 05월 23일 (월) 14:25:34 최응환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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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드는 인류가 문명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과학적인 사고를 못하고 어리석었기 때문에(childish”혹은 infantile”했기 때문에) 인류의 “유아기”에는 종교를 믿었지만 과학이 발달하고 과학적 지식을 갖게 되면 종교를 벗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과학이 발달한 지금에도 종교신자의 수는 점점 불어나고 있다.
 
인간이 신에게 기도를 하는 이유는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똑똑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똑똑한 짐승이다. 뭐가 안되면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인류가 문명을 이룩한 것도 인간의 지능 때문이다. 지식이 없는 것과 어리석은 것은 다르다. 학교도 다니지 않은 농부가 MIT를 나온 과학자 보다 똑똑할 수 있다. 다만 지식이 부족한 것 뿐이다. 미국사람이 외국인을 볼 때 영어를 못하면 바보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영어로 표현을 못한다고 해서 모르는 것이 아니고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다. 반대로 머리가 좋다고 해도 똑똑한 것은 아니다. 맬컴 글래드웰의 책을 보면 아이큐가 거의 200인 찰리라는 사람이 나온다. 누구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지만, 대학을 포기한 까닭에 가난하게 살고 있다.
 
인간의 지능이 최근 만년동안에 증가했다는 증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제대로 측정한다면 만년전 우리 조상이나 우리나 평균지능은 같으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우리 조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만년전에 화산 폭발이 일어났다고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는 화산 폭발이 왜 일어나는지 이유를 알고 있다. 그리고 화산의 활동을 측정하는 계측기도 있고 자동차나 비행기가 있기 때문에 화산에서 멀리 도망갈 수도 있다. 화산폭발이 신이 내리는 벌이라고 벌벌 떨지 않는다. 그러나 만년전 우리의 조상은 화산폭발의 이유도 알지 못하고 미리 예견도 못하고 도망갈 수도 없었다. 최근 일본의 예를 보자. 아무리 일본이 과학이 발달하고 지진에 대해 관측을 하고 준비를 하더라도 막상 닥치면 어쩔 수 없이 당할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이 무식해서, 어리석어서 당한 것일까? 아니다. 아직까지도 우리가 지진이 언제, 어느 크기로 닥칠지 정확히 예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병도 좋은 예이다. 지금은 누가 갑자기 배가 심하게 아프다고 하면 핸드폰으로 병원에 전화해 앰뷸런스를 불러 병원에서 의사가 검사를 해보고 맹장염이라고 판명되면 수술을 하면 된다. 그러나 만년전 우리 조상이 맹장염이 걸렸을 땐 어떻게 했겠는가? 맹장이 뭔지 맹장염이 뭔지 모르고, 의사도 없고 병원도 없고 전화도 없고 자동차도 없고 길조차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똑똑하고, 뭔가 어려움이 있을 떄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맹장염이 걸린 우리 조상의 가족들은, 환자를 편하게 눕혀놓고 어루만져 주었을 것이다. 또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인간은 똑똑하기 때문에 인과관계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모든 것에 이유가 있고 이유를 알면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이해못하는 무엇인가에 의해서 가족이 죽어가는 데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해 보자. 뭔가 보이지 않고 불가사의 한 것 때문에 사람이 죽어간다면, 뭔가 보이지 않고 불가사의한 바로 그 무엇에 호소하거나 그것을 움직여서 식구를 살려보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고 똑똑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인간은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무식해서가 아니다.  똑똑하고 해결책을 찾는 인간이기 때문에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동물들이 기도를 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고릴라들이 죽어가는 동료를 위해 손을 잡고 기도하는 것을 본 적도 없다. 영화에서 보는 것 처럼, “이대로 죽을 수는 없잖아! 뭐라도 해봐야지!”하는 것이다. 셜록홈즈의 말처럼, 범죄를 저질렀을 모든 가능한 방법을 다 검토했어도 불가능하게 보이면 바로 불가능한 것이 답인 것이다.
 
인간은 지성적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두려워 한다. 갑자기 닥친 죽음이나 천재지변의 무서운 이유는 예측할 수 없고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죽음이나 천재지변을 경험한 후에도 지능이 발달된 인간은 곰곰이 생각을 하게된다. 왜 홍수가 나는지, 왜 사람이 죽는지, 왜 식물이 자라는지, 왜 일식이 생기는지 모르던 인간, 수많은 불확실성에 둘러싸인 인간은 자신이 정확히 알지 못하는 초자연자에 의해 이런 상황이 생긴다고 가정할 수 밖에 없고, 이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는 초자연자에게 호소하려는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기도일 수도 있고, 노래를 부르는 것일 수도 있고, 처녀을 제물로 바치는 것일 수도 있고, 특별한 음식을 먹는 것일 수도 있고 강물에 몸을 담그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모든 행동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발달했다는 전제하에서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현명한 행동이다. “미친” 행동의 정의는 계속해서 해도 안되는 방법을 다시 한번 시도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정상적인 방법이 안통하면 최선을 다해서 뭔가 다른 것을 해보려는 것이 지성적인 인간의 행동인 것이다. 
 
과학이 발달해도 기도는 필요하다
과거의 종교는 천재지변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과학이 없던 시절에 갑자기 멀쩡하던 땅이 갈라지고 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덮칠 때 인간은 이런 파괴력을 가진 것은 신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신에게 기도했을 것이다.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다.
 
과학이 발달하고 지식이 쌓이면서 인간은 과거에 불확실성을 주었던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대한 해결책이나 대비책을 알게 되었다. 즉 천재지변은 신이 아닌 자연의 현상이라고 이해할 정도가 되었다. 연기가 나오는 산 근처에선 살지 말고, 자주 땅이 갈라지는 곳에 집을 짓지 않고, 자주 범람하는 곳에 살지 않으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식이 생겨도 기도도 안했는데 잠시 후 태양이 다시 보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은 화산이 폭발한다고해서 옆집 처자를 희생하자고 주장하면 경찰에 잡혀갈 것이다. 아무리 독실한 목사님이라고 하더라도 딸이 맹장염에 걸렸는데 하나님의 뜻이라며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자식이 병에 걸려도 수술도 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인간이 지능이 높다는 것은 평균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느 시대에나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산불이 나서 다른 원시인들이 다 도망가는데 자기는 조상이 움막을 지키라고 했다며 그냥 타죽는 원시인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커지게 된다. 병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다. 지진은 피했지만, 병과 죽음은 아직 피하지 못하는 인간은 이제 신에게 병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병에서 낳게 해달라고, 죽음을 미뤄달라고 기도하게 된다. 신도 마을 주민 전체를 화산 폭발로 죽이는 무지막지한 신이 아니고, 나쁜 사람을 개별적으로 벌주는 신으로 바뀐다. 물론 흑사병같이 대단위로 사람을 죽이는 신도 있지만. 이제 신은 개인적 안녕을 보장해주는 신으로 바뀐다.
 
현대는 어떤가? 질병의 원인,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뇌와 신체의 원리를 잘 알게된 지금 신체적으로 죽지않고 영생장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럼 이제 사람들은 왜 기도를 하는가?  비틀즈의“All You Need is Love”란 노래가 있듯이 현대 사람들은 아노미 현상으로 사랑이 부족하다. 이제 신은 사랑을 주는 신이다. 전쟁에서 승리를 주는 여호와보다 사랑을 주는 예수가 현대인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그것이다.  천재지변이나 질병이나 죽음은 과학으로 설명이 되었고, 돈을 벌고 망하는 것은 경제학적 원리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 현대인은 이제 신에게서 사랑을 갈구한다. 

올리비아 문이라는 미국의 여자 코미디언은 자신이 14살 때 근본주의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이 자신의 애인이라고 굳게 믿었고 나중에 예수님이랑 결혼한다고 확신했었다고 한다.  물론 농담이지만, 신의 가치는 이제는 완벽한 연인, 즉 항상 자기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배신하지 않는 그런 대상으로 전락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완벽한 사랑을 가져다 주는 큐피드로 복귀하고 있을 수도 있다.

불확실성 시대의 기도

결국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기도의 이유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고칠 수 없는 병이 있고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 자신을 배반할지도 모르고 왜 서로 사랑을 하는지 안하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성적인 인간이 가장 두려워 하는 불확실성이 과거보다 현대에 줄어들었는가? 현대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표현하지 않는가? 오히려 고대시대보다 지금은 불확실성이 더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 농부는 작물이 잘 자라고 식구들이 건강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만 비가 오지 않고 비료도 없다면 농부는 곡식을 잘 자라게 하려고 기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 기도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게 아니다. 집에 강도가 들어올지, 차를 몰고 가다가 자동차 사고로 죽을지, 자식이 대학시험에 합격할 지, 자기 직장에서 해고되지 않을지, 에이즈에 걸리지 않을지, 데모가 일어날지, 독재가가 자신을 감옥에 쳐넣을지, 일본의 핵물질이 한국으로 날아올지, 북한이 핵공격을 해올지, 타고가는 비행기가 납치될 지, 과거에 없던 수많은 불확실성이 새로 생겼다.

홍수는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미국과 중국이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되서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일반 개인의 힘으로 막을 수도 없고 바꿀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렇게 느낄 것이다. 이런 경우, 미국이나 중국의 지도자에게 호소할 수도 있고, 평화시위를 할 수도 있고, 직접 문제해결에 뛰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자기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인간은 과학 문명에 둘러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기도는 항상 좋은 것인가?
 
아니다. 기도가 행동을 대체하게 된다면 기도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수술을 받아야 하는 딸을 병원에 보내지 않고 집에 눕혀놓고 기도를 한다든가, 간질병에 걸린 자식을 퇴마를 하겠다고 신부님을 불러서 기도하고 성수만 뿌린다거나, 위정자들을 그대로 놔두면 자신들의 욕심 때문에 핵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데모를 하지않고 기도만 한다면 위기가 해결될 수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그래도 남아있는 불확실성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좋다. 즉 진인사 대천명이다. 진인사를 하지않고 대천명하는 것은 하느님도 바라지 않는 것일 것이다.  기도가 게으름이나 무지의 표현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근대 과학은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했지만 현대 과학은 불확실성을 우주의 기본적인 원리로 전제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한 기도는 인간에게 위안을 줄 수 있고, 불합리하지 않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무조건 기도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무조건 기도가 필요없다고 하는 것, 둘다 잘못된 생각이다. 모든 사람들이 현명한 기도를 하기를 기도한다.

최응환<경제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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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6)
  난 이렇게 기도합니다 (2) 곽건용 2011-05-24 16:06:23
상관없이 기도합니다. 물론 기도를 이 모양으로 하니까 내 기도가 행동을 대체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안 합니다. 내용도 없고 듣는 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면서 왜 기도하는가? 이렇게 물으면 대답이 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래도 그냥 합니다. 기도하는 게 좋으니까. 접때 보니까 종교에 관한 글 쓰고 영혼관리위원의 댓글이 없어 필자가 섭섭해 하는 거 같아서 며칠 두고 고민하다가 댓글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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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71)
  헉 선배님 의무감 안가지셔도 되요 최응환 2011-05-25 23:10:04
원래는 왜 인간은 종교를 믿는가라는 주제로 쓰다보니 개인적 종교와 조직적 종교의 차이 때문에 기도에 대한 글로 바꿨습니다. 조직적 종교에 참여하는 이유는 너무 다양해서 (친목도모, 비지네스 네트웍 만들기, 재산과시, 믿음과시, 공짜국밥, 배우자 선택 등 - 한마디로 엄불보다 잿밥) 글의 취지와 동떨어지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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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XXX.XXX.254)
  난 이렇게 기도합니다 곽건용 2011-05-24 16:02:59
뭘 이뤄주십사고 기도할 때도 물론 있지만 그게 단지 기도했기 땜에 이뤄질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이뤄질 일, 이뤄저야 할 일은 이뤄질 거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 기도에는 사실상 '내용'이랄 게 없습니다. 그냥 기도합니다. 누구에게? 내가 믿는 신에게.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기도하느냐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기도합니다. 내용도 없고 상대방이 누구든, 그분이 듣든 안 듣든
추천0 반대0
(66.XXX.XXX.71)
  로.또 2011-05-23 21:45:48
맞게 해달라고 10여년을 기도하던 사람이 기도 응답이 없다고 투덜거리자 하나님 왈 “로.또나 사면서 얘기하렴” 하셨다는 조크가 생각나네요.^^
필자의 마지막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넓혀 생각하자면 그릇된 맹신이나 그 반대나 모두 경계하자는 말씀이겠죠.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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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31)
  정말 적절한 비유입니다 최응환 2011-05-24 16:10:29
기도도 할 자격이 있어야...
추천0 반대0
(211.XXX.XXX.254)
  기도 홍선례 2011-05-23 16:05:43
기도는 나의 바램이고 믿으면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종교가 다 마찬가지이지요.
추천0 반대0
(76.XXX.XXX.199)
  통찰력있는 글... Kong 2011-05-23 09:14:44
최선배님의 글은 언제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번 글도 감사합니다.

대부분 공감하구요. 다만 저는 인격적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조금 다른 생각도 있습니다. 부모 자식의 관계를 보면 어렸을 땐 뭔가 해달라고 떼쓰기만 하지만 커가면서 그런 것보다는 감사의 마음을 많이 갖게 되잖아요. 마찬가지로 우리의 지식의 폭이 넓어짐에 따라 간구의 내용이 성숙해지겠지만 감사와 찬양의 기도 또한 깊어짐을 느낍니다.
추천1 반대0
(99.XXX.XXX.225)
  기도는 인간이 오달 2011-05-23 09:11:31
자신의 한계를 알면 자연히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기도는 그의 입장에서 절실합니다.
현명한 기도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추천0 반대0
(76.XXX.XXX.150)
  현명한 기도 이충섭 2011-05-23 08:52:40
스피노자님, 반갑습니다.
기도는 당연히 현명한 기도를 해야겠지요.
동시에 과학 역시 현명한 과학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 찜쪄 먹는 기도, 기도 뺨치는 과학도 심심치 않게 많으니까요.
그리고.. 기도도 과학도 않고도 잘 사는 사람 있다고 보구요.^^
추천0 반대0
(99.XXX.XXX.225)
  확실해도 이상희 2011-05-23 08:41:31
불확실한 일들 뿐 아니라 확실한 일들에도 기도는 필요합니다. 기도가 인간과 신과의 소통이라면 말입니다. 수다를 많이 떨어본 경험에 의하면, 모두 다 알고 있는 일이라 해도 수다를 떨면서 서로의 관계가 돈독해지거든요..
추천1 반대0
(138.XXX.XXX.214)
  일방적인 수다가 아니라면 최응환 2011-05-24 00:50:27
그렇지요. 기도가 일종의 자기최면의 측면도 있습니다.
추천0 반대0
(211.XXX.XXX.254)
  그러니까 양민 2011-05-23 13:10:53
기도를 신과 나누는 수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ㅋㅋ
I like the idea....
추천0 반대0
(99.XXX.XXX.48)
  그렇다면 수양(Sue Yang) 과 수리(Sue Lee)와 매일 수다를 나누는 저희들은 2011-05-23 18:59:54
수양신과 수리신께 매일 기도를 드리고 있는 걸로 보면 되겠네요. ㅎㅎ
추천0 반대0
(74.XXX.XXX.26)
  응환 선배는 실용적이면서도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을 가끔 이렇게 던져주시는군요. 변변 2011-05-23 03:29:04
[진인사대천명] 이라고 중학교 때 배웠던 문구가 생각나는군요. 인간이 할 도리를 다 하고 나서 하는 기도와 자기 할 일은 하지도 않고 일단 기도부터 하고 보는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요행을 바라는 것은 기도가 아니고 주술에 가깝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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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XXX.XXX.170)
  그것 봐 양민 2011-05-22 22:25:59
응환씨나 나나 같은 생각이잖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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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XXX.XXX.29)
  깊은 성찰이 담긴 글입니다 이원영 2011-05-22 21:33:22
종교, 기도, 예민한 문제입니다만, 그렇다고 비껴갈 수는 없는 문제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메시지입니다. 사람의 할 일을 다 한 다음에 기도를 하자는 말씀에 수긍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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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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