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9.10 월 18:29
> 뉴스 > 역사 편지 쓰기
       
"애국정신을 늘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김석두님이 조부께 드리는 역사편지
2010년 10월 19일 (화) 16:27:26 김석두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김석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클릭!  

존경하옵는 항일의사 구천 할아버님께
 
2010년 올해,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열리는 미주한인 역사대회 행사의 하나인 여러 독립운동 선조에게 드리는 역사 편지 쓰기 대회에 손자인 저는 자랑스러운 할아버님에게 편지를 쓰게 되어 너무나 가슴 벅차오름을 느낍니다.
 
1905년 일제의 을사보호조약 체결 후 24세 청년이셨던 할아버님께서는 우국 일념으로 항일투쟁 모의운동을 시작하여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호남 의병대장 정재 이석용 장군과 의기투합하여 군수조달책을 맡아 전 재산을 독립운동 기금으로 쾌척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1973년 4월23일 아버지(차남 기철)와 장손인 큰집 형님(석규)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할아버님의 항일 독립운동사인 ‘항일 의사 구천 공(상집 김형돈) 행장록’을 읽고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기억을 되새기며 뜨거운 감동을 받았던 때가 언제나 떠오릅니다.
 
그 책 권두언을 쓰신 노산 이은상 독립운동사편찬위원장의 글 가운데 “의병대장인 정재 공은 전선에서, 구천 선생은 후방에서 군수물자를 조달하다가 다 같이 체포되어 옥고를 수차례 치렀으며, 마지막 동지인 정재 공이 옥중에서 사망하게 되자 시신을 고향으로 운구하여 장사를 지냈으니 두 사람의 인연은 남달리 두터웠다. 구천 선생은 평생 소원인 민족의 광복을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여한이 없을 것이요. 다만 우리는 선생이 한결같은 지조를 지키며 한평생을 살다 가신 것을 본받고, 나아가 그 뜻과 행적을 기리 후생들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라고 적었습니다. 읽어보면 볼수록 이 손자 얼마나 가슴 뿌듯해지는지 할아버님은 아마 모르실 겁니다.
 
할아버님! 돌아가신 지 60년이 지나도록 한문으로 된 할아버님의 ‘행장록’을 한글판으로 번역하여 제 후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수년 전에 번역만 마치고 출판을 미루어온 불효를 참회합니다. 아버님의 음덕을 기억하시는 형구 할아버님께서 번역해 주신 할아버님의 이 고귀한 항일투쟁의 유산을 충효의 덕목으로 삼고자 내년 2011년 아버님 탄생 100주년(13주년 기일), 할아버님 탄생 130주년(61주년 기일)을 맞아 후손들이 대가족 모임을 가지면서 출판하여 봉정하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할아버님과 의병장 정재 이석용 공, 두 분의 동지애로 이룩한 항일투쟁 의병대원들의 국가 독립유공자 신청 시에 정재 이석용 공의 장남 이원영(풍수가)씨로부터 저에게는 큰아버님이신 구천 공의 장남 김인철과의 조상묘지 풍수지리 다툼으로 인한 극심한 불목의 여파로 고의적으로 할아버님을 신청 명단에서 누락시키게 되었다는 고백을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후 할아버님의 차남인 아버님(기철 김신봉)이 1977년 2월과 1983년 1월 원호처에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을 한 바 있었고, 손자인 저 또한 이곳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을 통하여 2007년11월30일 진실화해위원회로 재삼 신청을 하였던 바 개연성은 있으나 확증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보훈처로 재차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은 바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동길 교수가 이곳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애국지사들의 후손들이 돈 타먹기 위해서 혹은 그 명예를  얻고자 함은 애국지사들인 조상들께 오히려 욕이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논평함을 듣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또한 할아버님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의 말씀을 실천하시는 분임을 알고 재조사 신청을 그만 두고 말았습니다.
 
그 옛날 시골 거지들이 아침저녁 식사 때가 되면 밥달라고 동냥 오면 할아버님은 한술도 드시지 않고 그 밥상 찬까지 그냥 그대로 거지에게 주시곤 하셨다는 이야기를 생전에 어머님으로부터 여러 차례 들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또한 1912년 12월 수감되셨다가 1913년 10월 전주 감옥에서 출옥하신 후 정재 공이 사형선고를 받고 대구 감옥으로 이송 후 1914년 옥사하시자 수백리 길을 걸어서 시신을 상여에 매고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 금당리 할아버님 처소에 은신해 있던 가족들에게 신면시켜 드리고, 고인의 선산인 전라북도 임실에 안장하도록 동지애를 보여주셨던 할아버님이 너무나 존경스럽습니다. 바로 벗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치는 참된 우정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고 함석헌 선생의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의 시가 생각납니다.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마음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초 소생은 아버님께서 할아버님이 남겨주신 고귀한 유산인 멸사봉공 애국충정의 얼을 담은 대한의병대장 정재 이공 석용의 ‘옥중 마지막 서한’과 할아버님의 ‘봉곡 조사의 글’과 묘소 전경사진 액자를 집안에 걸어 놓고 매일 아침저녁 기억하며 기리고 있습니다. 추석과 설 명절 때 그리고 아버님, 어머님 기일 때마다 제사 드리며 충효의 가르침을 아들과 손자들에게 추모 드리는 예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할아버님의 영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액자들은 아버님께서 영정 대신 걸어놓으신 것들 입니다. 생전에 왜놈들의 사진기로 사진촬영을 거부하셨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진은 의병장 이정재 공의 장남 이원영이 할아버님 묘비 제막식에서 속죄하는 뜻에서 흰 갓을 쓰고 하얀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참회하려 왔던 사진입니다. ‘대한의사 김형돈 경하’의 글로 참회 드리는 장면은 제가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이 사진들을 동봉하오니 저희 후손들의 충정을 부디 가납하여 주시옵소서.
 
할아버님! 제가 미국에 이민온 지 30년이 훌쩍 넘어 이제 이민선조가 되었으니 중시조의 막중한 사명감을 느낍니다. 저에게는 미주 이민 후손들의 미국문화 적응과 동화에 대한 문제를 잘 가르쳐야 할 책무가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원 70년에 나라 잃고 2000년간을 세계 여러 나라로 떠돌이 삶을 살아왔어도 그 나라에 잘 적응하였지만 결코 그 나라 사람으로 동화 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주목합니다. 그들은 고유의 종교, 전통, 언어, 풍습, 문화를 잘 지켜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세 사람 중 한 명꼴로 배출하고 있습니다.
 
할아버님! 우리도 그들처럼 우수한 민족으로 미주이민 역사를 이루려면 미국 문화에 적응해가는 것은 잘해야 하지만 동화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미국에 와서 오래 살아도 조국에 대한 애국심과 예절과 미풍양속,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부모의 지나친 보호와 사랑과 물질만능, 성의 자유와 문란 등 인터넷 시대의 문명중독 심화로 도덕이 상실 되어가는 후손들의 초상화가 그려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아버지께서 저를 100리길 읍내 중학교에 진학시키려는 것을 아시고, 그해 여름방학 동안 할아버님께서 직접 ‘추구(推句)’라는 한문 시집을 소리내 가르쳐 주셨던 글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녹죽군자절(綠竹君子節)이요/ 청송장부심(靑松丈夫心)이라/ 인심조석변(人心朝夕變)이요/ 산색고금동(山色古今同)” 이라는 글이 아직도 저의 뇌리에 그대로 꽂혀 있습니다. 산은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 그대로인데 사람의 마음은 왜 조석으로 변하는 것일까? 어릴 적 그 의구심이 이제 70세 할아버님의 나이와 똑같아진 제가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를 데리고 산을 찾아 오르고 또 오르면서 가르침을 깨우쳐가고 있습니다.
 
4남매 자식들에게 행하지 못한 잘못을 참회하면서 2년 전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백두산을 기점으로 세 차례에 걸쳐 지리산까지 도상거리 670킬로미터, 실제거리 1,000킬로미터를 남북통일을 기원하고 가화만사성을 이루고자 부부산행으로 금년 6월에 끝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때에도 ‘추구(推句)’의 시 가운데 “처현부화소(妻賢夫禍小) 자효부심관(子孝父心寬)/ 자효쌍친락(子孝雙親樂)/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아내가 어질면 남편의 화가 적고, 자식이 효도하면 부모가 너그럽고, 자식이 효도하면 두 분 어버이가 기뻐하시고,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이라는 교훈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온고지신의 지혜로서만이 모든 가정에서부터 화목의 덕을 이루고, 사회의 화합과 민주국가의 통일로 나아가는 길임을 깨닫곤 합니다.
 
할아버님! 정말 고맙습니다. 할머님과 함께 천상에서 아버님과 어머님의 효도 받으시며 영원한 삶을 누리시길 간구 드립니다.
 
2010년 10월 미주한인 역사대회를 맞이하여
 
손자 석두 올림

 

ⓒ 아크로폴리스타임스(http://www.acropolistime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쓰기
이름 비밀번호
제목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현재 0 byte/최대 400byte)
전체기사의견(11)
  훌륭한 교육 사업의 선구자의 혜안이십니다 김석두 2010-11-01 18:44:43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충효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성찰 해온 글이었습니다
추천0 반대0
(207.XXX.XXX.203)
  양민 박사님 의 혜안 , 대학길잡이 출간 김석두 2010-11-01 18:51:28
이민 자녀들의 교육을 위한 선구자로 떠 올랐습니다
추천0 반대0
(207.XXX.XXX.203)
  옛날 우리 훌륭하셨던 선조들 양민 2010-10-23 00:03:22
감사하는 마음이 샘솟습니다. 다시금 머리가 숙여집니다.
추천0 반대0
(75.XXX.XXX.201)
  요즘 보기드문 "가문의 영광" 이군요. auramon 2010-10-22 10:39:19
"할아버님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의 말씀을 실천하시는 분임을 알고 재조사 신청을 그만 두고 말았습니다."
정말 감동적입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추천0 반대0
(131.XXX.XXX.219)
  조상님의 음덕으로 격찬을 받게됩니다 김석두 2010-11-01 18:57:18
그래서 다석유영모 선생님은 저의 할아버님 같은 익명의 크리스찬(칼 라너박사 의 이론 ) 은 선교대상이 안된다고 하였나봅니다
추천0 반대0
(207.XXX.XXX.203)
  그 어르신의 그 손자 이충섭 2010-10-20 08:55:08
감동의 연속인 글입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케 합니다. 인심조석변.. 참 당황스럽습니다.
추천0 반대0
(99.XXX.XXX.225)
  인심은 초초변의 시대라서 김석두 2010-11-01 19:06:04
너무 과찬입니다. 그래서 1주일 1~2일을 할아버지와 할머니랑 간접적으로나마 3대 이상향을체험하고있습니다.아들 며느리가 빠진상태에서 ...먼 훗날 우리손자가 이 할아버지에게 편지쓰는 롤 모델이 되고싶은데....
.
추천0 반대0
(207.XXX.XXX.203)
  감동적인 김지영 2010-10-19 09:54:38
역사 이야기입니다. 조선 시대 의병 한국인의 대단한 혼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학자들이 이 문제를 좀더 조명했으면 합니다.
석두님 귀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76.XXX.XXX.150)
  3.1운동의 혼이 바로 의병의 혼에서 김석두 2010-11-01 19:22:01
제1회 미주한인 역사대회와 이튿날 학생들의 토론과 일본 의 젊은 여성의 영화 감독및 제작자의 용감한 일본의 수치를 파혜치는 영상물 감상에서 한일. 일한의 미래가 밝아짐을 예감 할수있었습니다 진지하게 마지막 시상식까지 사진기자 활동을 하는 열정에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애국 변호사의 풍채가 빛나 보였습니다
추천0 반대0
(207.XXX.XXX.203)
  김석두님은 항상 이원영 2010-10-19 07:38:42
민족정신을 먼저 생각하시고, 가정에서도 이를 실천하시는 분입니다. 얼마전 6살 난 손자에게 호연지기를 길러주어야 한다며 마운틴 볼디를 함께 올라 손자로부터 "할아버지 산에 오르니 비행기 타는 것 보다 더 좋아요"라는 말을 이끌어내시기도 했습니다. 항일 독립운동가의 피와 기개가 넘치는 분입니다.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71.XXX.XXX.74)
  조부님의 피와 기개가 넘처보인다고 격찬 하시니 김석두 2010-11-01 19:32:16
정말 고맙습니다.그래서 저 아내는 살이 너무빠질 정도로 하지말아달라고 합니다.
손자 강행훈련도 소극적이었습니다만 이번 역사편지쓰기대회 입상으로 여러 동문들의 박수소리가 들려 아들 며느리 할머니의 응원이 기대됩니다.조상의 음덕입니다 .하느님의은총입니다.다시한번 격려해 주시어 감사 드립니다
추천0 반대0
(207.XXX.XXX.203)
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3600 Wilshire Blvd., #1214 LA, CA, 90010, USA|Tel 1-818-744-100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경훈
Copyright since 2009 by The Acropolis Time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ditor@acropolis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