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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선생님 조국은 무엇인가요"
김문엽 동문이 도산에 보내는 편지/역사대회 캠페인에 부쳐
2010년 08월 30일 (월) 14:58:23 김문엽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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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은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지 100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입니다.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이민 100주년을 넘겨 크게 성장한 미주한인들이 조국의 지나간 10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100년을 내다 보면서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인 한일관계와 한반도의 희망찬 비전을 다져가기 위해 제 1회 ‘미주한인역사대회’가 10월 2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됩니다.
 
이 역사대회의 일환으로 역사편지쓰기 캠페인이 8월 23일부터 10월 15일까지 약 8주 동안 실시됩니다. 미주지역 최초로 시도되는 역사편지쓰기 캠페인은 우리에게 귀감이 될만한 역사적 인물이 살아있다고 가정하고 역사 속 인물에게 편지를 쓰거나 또는 내가 역사 속 인물이 되어 후손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태로 쓰면 됩니다. ‘역사는 어렵고 딱딱하다’라는 선입관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를 보다 쉽고 친근감 있게 생생한 대화 형태로 되살리는 역사 편지쓰기는 미주지역 최초로 시도되는 것입니다. 미주한인은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이번 역사편지 캠페인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문엽 동문이 도산 안창호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입니다. 내가 역사적 인물이 되어서 후손에게 보내는 편지도 흥미로울 겁니다. 내가 유관순이 되어본다면 후손에게 어떠한 말을 들려주고 싶을까요?  또는 이완용이 되어 본다고 해도 후손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정말 많지 않을까요? 내가 대화하고 싶은 역사의 인물을 찾아서 한번 도전해 보세요. 한국 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서 증정하는 독립유적지 답사여행 등 알찬 상품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웹사이트 www.100history.org  문의/접수 이메일 100history@gmail.com

<서문:정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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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By 김문엽>

선생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편지 받아 보신지 오래되셨죠?  왜 요즘은 편지를 안 보내냐고요?   요즘은 전부 이메일이란걸 씁니다.  그 곳에 인터넷이 없으면 받아 보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저 역시 편지 써 본지가 너무 오래 되어 이렇게 선생님께 편지 쓰는 것이 어색하네요. 

너무나도 바쁘게 살아 왔습니다.  하루라도 이메일이란 것을 확인 안하면 불안했습니다.  휴대폰이란 전화기가 잠시라도 제 곁에 없으면 불안해서 못 살았습니다.  
오랜만에 도시를 떠나 카탈리나란 섬에 왔습니다.  전기도 없는 이곳 캠핑장에 와서 휴대폰도 없이 인터넷도 없이 살고 있습니다.  불안했던 마음이 며칠이 지나니 안정이 됩니다.  첫날밤에는 보이지 않던 별들이 이제는 보입니다. 

별이 참 많습니다.  밤하늘에 저렇게 많은 별들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아 왔습니다.   제가 사는 Los Angeles에서는공기가 나빠 별이 안보이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보니 제 마음이 불안하고 분주해서 별이 안보이는 것이었더군요.  

조국을 떠나 이곳 미국에 와서 살게 된지도 벌써 이십년이 다 되어 가는군요.  선생님은 힘이 없는 조국을 일으켜 보시려고 이곳 미국에 오셨지만 사실 저는 나 혼자 편하게 살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조국이 싫었습니다.  민주 정치 하나 못해서 군사독재에 시달리는 조국이 싫었고 지역감정으로 갈려 싸우는 조국이 싫었습니다.  조국에 대한 그리움은 있었어도 미련은 없었습니다.  나하나 잘 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 빨리 미국에 정착하고 이곳에서 성공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라고 생각해서 미국 시민권도 취득하고 그때 영어이름도 하나 지었습니다.   Joshua 라고.  그리고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지금은 두아이의 아버지입니다.  큰 애는 지금 여섯살이고  이름은 저와 같은 Joshua 입니다.  Joshua Jr. 가 되는 셈이지요.  그래서 미국사람은 JJ 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물론 한국 이름도 있습니다.  김 하영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항상  미국 이름대신 하영이란 한국 이름을 고집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아직도 영어가 서툰 나는  Joshua 란 이름을 쓰지만 미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에는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아들 녀석은 항상 하영이란 한국 이름을 씁니다. 

특별히 한글학교도 다녀 본적이 없고 미국교회를 다녀한국사람과 어울릴 기회도 많지 않았는데 미국사람들이 이름이 무어냐고 물으면 항상 “하영” 이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미국 사람들이 잘 못알아 들으면 H, a, y, o, u, n, g 하고 스펠링까지 말해줍니다.

이곳 캠핑장에는 미국 각지에서사람들이 와서 만나면 자연스럽게 서로 “Where are you from?”  라고 물어봅니다.  저와 아내는 Los Angeles 라고 대답하는데 아들녀석은 항상 South Korea 라고 대답합니다. 
Korea 면 Korea지  South Korea는 무엇이냐고요?   안타깝게도 조국이 독립이 되었지만 남북으로 분단이 되어 두개의 Korea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고향인 강서는 지금 북한으로 되어 있습니다.   언제 South Korea, North Korea 란 말 대신 그냥 Korea 란 말만 하고 사는 날이 올까요?   선생님이 조국 독립을 꿈꾸어 오셨듯이 저도 통일 조국을 꿈꾸어 봅니다.

아들 녀석에게 특별히 뿌리교육을 시킨적도 없는데 자기는 Korea에서 왔다고 대답하고 한국이름을 고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20년전에 떠나온 조국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선생님, 우리같이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조국 대한민국은 무엇입니까?

선생님도 저와 똑같이 태평양을 건너 와 이곳 미국에서 살으셨었죠.   선생님같이 훌륭하신 분이 리버사이드에서 오렌지를 따는 일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하찮은 일도 정직과 성실로 할때 조국의 광복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렌지 하나를 따도 상처나지 않게 따는 것이 곧 나라를 위하는 일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을때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지요.  미국에서 오렌지 따는 일과 태평양 건너 대한민국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안창호가 리버사이드의 오랜지농장에서 일하는 모습, 1904년(후에 채색된 사진)
“오랜지 한개를 정성것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다”라고 한인들에게 지도하였다.

 

   
Ahn, ChangHo at work in orange grove in Riverside, Cal. 1904(출처: www.koamhistory.com/.../Pictorial_History/195)

선생님, 사람들이 저에게 미국에 살고 있고 미국 시민권자이면서 대한민국에는 왜 그리 관심이 많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아니, 옛날에는 제가 그런 질문을 이곳에서 살고 있는 다른 한국사람들에게 많이 했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을 잊으려고 노력했고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제 아들이 다시 조국 대한민국을 생각나게 하는군요.

선생님,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무덤덤했습니다. 
초등학교 몇학년이었는지는 잘 생각 안나지만 선생님이 훌륭한 독립운동가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솔직히 선생님이 왜 훌륭하신지 몰랐습니다.  그냥 콧수염이 멋있어 보이는 신사로밖에 안 보였습니다.  안중근의사처럼 통쾌하게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것도 아니고 윤봉길 의사처럼 일본군 장군들을 죽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김좌진 장군처럼 청산리 대첩을 이루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은  의사나 장군도 아닌 그냥 선생님이셨습니다.

도산정신이 무엇인지 이해가 안갔습니다.  왜 선생님이 존경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왜 존경받아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선생님 생애 어떤 결과를 못 보시더라도 우리 후손들이 진정 행복해지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행복보다는 먼훗날 저와 같은 후손들이 행복해지시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결코 한 순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인내의 길을 걷기를 선택하셨습니다.  결코 열광적인 호응도 없었고 눈에 보이는 결과도 없는 외롭고 먼 여정이었습니다.  
 

   

LA에서 서재필과 안창호, 1925년
(출처:
www.koamhistory.com/.../Pictorial_History/195)

선생님이 고향에 처음 세우신 학교 이름마저 “점진”학교라고 지으셨듯이 선생님은 항상 무슨 일이든 단번에 이루려고 욕심부리지 말고, 때를 기다리며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곳 미국에 오신 후에 이미 결혼까지 하신 스무 다섯살 어른이 체계적으로 다시 공부를 해야한다면서 초등학교에 입학하셔서 공부하셨습니다.  이미 고국에서 학교를 세우시고 교장선생님이셨던 분이 개구장이 꼬마들과 같이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설마 그때는 콧수염을 안기르고 계셨겠죠?  
조국을 일으키겠다는 그 신념이 없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코메디로 밖에 안 보일 그 모습에 저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위인도 갖지 못했던 비장함이 느껴집니다.  선생님이 가지셨던 그 비장함의 만분지 일도 못 갖고 살아가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때가 벌써 100년전 일이고 광복이 된지는 65년이 되었습니다.   세월 참 빠르죠?   한 세기 전 주변 강대국들의 이권다툼으로 희생된 조국은 우리 힘으로 해방을 이루지 못하고 해방 후 또 다시 외세의 힘으로 분단된 채 6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이곳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 조국의 지나간 100년을 돌아 보고 앞으로의 100년을 내다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미주한인 역사대회를 개최합니다. 

선생님,  역사는 고리타분한 과거일 뿐인가요?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고 이야기하기도 바쁜데 웬 역사이야기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싶어서 지난 100년을 생각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도 이완용이나 일본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잃은 것은 이완용 일개인 탓도 아니오, 일본 탓도 아니라 우리가 힘이 없어서였다.  그러하니 나라의 독립은 국민 개개인이 힘을 가질 떄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므로 점진적으로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 고 하셨죠. 
일본에 안 지려고, 그리고 이곳 미국에서 인정받으려고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를 되돌아 보고 싶습니다.  그래야 다시 달려 나갈 수 있으니까요.   

 선생님이 말씀하셨죠.   “나는 우리 민족의 장래에 큰 소망을 가집니다.  나는 우리 민족의 본질에 대하여 조금도 비관을 품지 아니합니다.  우리는 넉넉히 대사업을 이룰 민족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선생님, 저도 감히 선생님이 가지고 계셨던 그 소망을 품어 봅니다. 
-카탈리나 섬에서 김문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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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4)
  편지 잘 읽었습니다 김성수 2010-09-03 11:42:36
안창호 선생이 가까이 다가온 느낌입니다. 하영군 같은 범상한 인물이 아무곳에서나 자라나는 것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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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XXX.XXX.1)
  훌륭한 글 빼어난 비전, 찬찬히 읽으면서 변변 2010-09-03 07:54:59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집니다. 홍명기 라는 분을 몇번인가 뵌 적이 있는데 도산 정신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의 사위인가 Mr. 서 라는 분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뛰는 분입니다.
추천0 반대0
(75.XXX.XXX.12)
  역사적 인물들에게 편지쓰기는 2010-08-31 20:35:17
참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쉽게 써지지는 않겠지만...
문엽님의 애국심에 감동하며, 하영군처럼 뿌리를 잊지 않는 2세들을 길러내는게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읍니다.
추천0 반대0
(67.XXX.XXX.146)
  그 아버지에 그 아들 2010-08-31 21:33:55
지난번 차량에 독도 홍보 배너를 달고 다니자는 켐페인을 생각한 신선한 아이디어의 주인공이며 또한 솔선수범한 김문엽 동문, 이번의 역사 편지 켐페인도 그 맥락에서 이어지는 또다른 신선한 발상이군요. 아버지를 앞서가는 하영군을 볼때 뿌리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오는 도산으로 부터의 감동은 그의 이룬 업적이나 위대함보다 따스한 인간미입니다. 맏딸 안수산님의 어린 소녀 같은 표정에서 읽혀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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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XXX.XXX.29)
  안수산님의 소녀같은 표정 2010-08-31 23:22:31
정말 그리고 보니 안수산님은 어린 소녀같은
맑은 표정을 지니셨네요. 연세가 90세가 넘으셨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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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74)
  1915 년에 태어나신 걸로 나와있고 2010-09-01 07:50:33
아직도 모임에도 참석하시어 말씀을 전하시는 것을 고려해보면 100세는 무난히 채우시지 않으실까 생각됩니다. 남가주 한인 사회에 경사가 되는 날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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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XXX.XXX.29)
  맞습니다...하영군처럼 연진 2010-08-31 20:53:42
하영군처럼 뿌리를 잊지 않는 2세들을 길러내는일...
참 쉽지 않은 일이지요. 우리말도 잘 모르는 영어권 아이들에게
우리 역사를 알게 해준다는 것이 말이지요.
이번 기회에 역사인물과의 대화를 글로 써서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면서 들려주면 아이들도 역사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추천0 반대0
(71.XXX.XXX.74)
  도산 선생님 댁은 Five Moons 2010-08-31 08:26:19
오늘 날 관악연대가 모이듯이 당시 한인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었답니다.
대부분 홀아비였던 한인들이 도산 선생 집에 모여 김치 파티를 했다고.
자주 모이다 보니 도산 선생이 지도자가 되었고, 밥만 먹은게 아니고
겨래 걱정을 하게 되었답니다.
관악도 자주 모이다 보면 나라 걱정 민족 걱정을 하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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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50)
  나라걱정, 민족 걱정을 하는 모임 코러스21 2010-08-31 20:50:59
나라걱정, 민족 걱정을 하는 모임이 벌써 있는디유...
코러스21 이라구 협니다... 목요일마다 격주로 모이지유.
장소는 서울대미주센터 사무실, 다음 모임은 9월2일입니다.
추천0 반대0
(71.XXX.XXX.74)
  안창호 선생이 사시던 집이 양민 2010-08-31 11:02:36
USC 캠퍼스내에 아직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한국학과 아시아학을 연구하는 East Asian Studies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는 군요. 학교내에 있어서 상대적으로는 잘 보존되어있지만
학교사정에 따라 이 곳 저 곳 통째로 옮겨지긴 했습니다. 현대식 건물들 사이에 조그만 예날 하우스가 어떻게 보면 신기합니다. 1980년대 에는 Vermont 길쪽 USC 입구에서 불과 한블록 안쪽에 있었지요. 화공과 사무실 밖에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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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159)
  감동적인 2010-08-30 21:25:40
편지입니다. 그리고 김하영군이 자랑스럽습니다.^^
"오렌지 하나라도 상처나지 않게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다"라는 도산 선생의 말씀이, 미국에서 살면서 나의 작은 행동 하나가 혹여 한국의 이름에 조금이나마 누가 된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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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XXX.XXX.90)
  자전거 타는 것을 잠시 멈추시고 이상대 2010-08-30 20:31:47
폐북도 잠시 멈추시고 한번쯤은 진지하게 미국속의 나는 무엇인가 하고 역사 의식을 가지고 뿌리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미주한인역사대회를 준비하고 역사 편지 켐페인 위원장으로 수고하시는 김문엽 동문께 박수를 보냅니다.
추천0 반대0
(68.XXX.XXX.29)
  다들 자전거 타러 가셨나? 워낭2 2010-08-30 17:31:56
오늘 영 손님 없네...쩝.
추천0 반대0
(66.XXX.XXX.193)
  김문엽님의 역사 편지 감동입니다 워낭 2010-08-29 22:24:26
딱딱한 역사라는 주제를 역사 편지쓰기로 대중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국치 100년을 돌아보게 하는 뜻깊은 기획이라 생각합니다. 역사대회 실행위원인 김문엽님의 활동이 기대됩니다. 좋은 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독도 캠페인으로 아크로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는데, 이번에도 한인사회에 작은 씨앗을 뿌리기 바랍니다.
추천0 반대0
(71.XXX.XXX.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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